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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2014.06.12 02:53 종합 1면 지면보기
미국 월가의 최대 관심사는 초읽기에 들어간 중국 알리바바의 상장이다. 온라인 쇼핑몰인 이 회사는 상장 후 값어치가 20조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주인공은 막노동으로 학비를 벌었던 창업자 마윈(<9A6C>云) 회장이다. 중국 벤처기업 소셜터치의 장루이 대표는 “중국 정부의 수많은 정책보다 마 회장 한 사람의 존재가 중국 청년 창업과 도전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손정의 투자로 중·일 20조 잭팟, 한국기업은 189조 쌓아놓기만 … "기업가 정신 실종"
"미래 여는 건 오너 도전정신"

 숨은 주인공도 있다. 일본 정보통신기술 업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다.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의 최대주주(34.4%)다. 알리바바가 상장하면 3000배의 수익이 예상된다. 미국 3, 4위 이동통신사 인수를 잇따라 추진하면서 자금난 우려가 있었던 것도 알리바바 상장을 계기로 한 방에 날리게 됐다.



 손 회장은 알리바바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15년 전 마 회장을 만나 단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 손 회장은 “알리바바 투자는 즉흥적 결정이 아니다”라며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미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고 확고한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이 20조원 잭팟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한국만 외톨이가 되고 있다. 도전을 이끌 기업가 정신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혜안을 담은 기업인들의 굵직한 결정은 자취를 감췄다. 100대 기업은 현금성 자산 189조원을 쌓아두고 있을 뿐이다.



 그사이 세계의 기업가들은 전투에 돌입했다.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긴 불황을 딛고 미래 준비를 위해 인수합병(M&A) 경쟁에 나선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은 올해 세계 기업 M&A는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제일 큰 장(3조7000억 달러)이 될 것으로 관측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100억 달러 이상의 빅딜 15건 중 7건은 오너 경영인이 주도했다. 손정의 회장은 “판단을 하고, 책임을 지 는 것은 결국 창업자나 오너 경영자의 몫”이라며 “임기가 4~5년인 샐러리맨 사장은 큰 시야로 사업을 펼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기업가 정신이 발휘돼 급성장을 이룬 곳이 바로 한국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세계 M&A 시장에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목을 끈 M&A는 다음·카카오 합병 정도다.



심지어 갈수록 ‘뒷북 경영’이다. 글로벌 화학기업 듀폰은 2012년 승승장구하던 기능성 코팅 사업을 매각했다. 잘나갈 때 제값을 주고 팔고, 이 돈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자금난에 몰려서야 계열사를 내놓는다. 제값 받기도 어렵고, 체력은 체력대로 고갈된다. 금융시장은 불안하기만 하다. 기업 총수들의 ‘말씀 경영’도 껍데기만 남았다.



 과거 주요 기업가들은 충격적인 말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직접 사업 현장을 누비거나 성과를 낸 덕에 ‘경영 지휘’에 무게감이 실렸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무실에서 반복적으로 위기만 강조하고 비전은 제시하지 못하니 ‘말씀’이 통할 리 없다”면서 “보수 공개가 된다고 실질적인 최고경영자가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은 “도전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활동을 옭아매는 정책 환경도 도전을 억누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0일 법인세 인하를 골자로 한 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일본판 스티브 잡스를 육성하기 위한 연구비 지원도 추진된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활기를 잃고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며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춤하고 있는 규제 개혁을 다시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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