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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이병철 위기 돌파 DNA … '경영학 아버지' 드러커도 극찬

중앙일보 2014.06.12 02:52 종합 5면 지면보기
한국 경제의 성장사는 위기 극복과 궤도를 같이한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개척 유전자(DNA)’를 발휘해 성장 돌파구를 마련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과거 “기업가 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는 의문의 여지 없이 한국”이라고 꼽은 이유다.



 1975년 오일쇼크 때 기름값이 4배 이상으로 뛰면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불러 “오일쇼크로 부자가 된 중동에서 대책을 찾아오라”고 주문했다. 정 명예회장은 중동에 다녀온 뒤 이런 대답을 내놨다. “중동은 건설 공사를 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이다.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모래와 자갈이 지천이어서 자재 조달이 쉽다.” 현대건설은 이듬해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공사를 수주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반도체 산업 투자를 결정한 때는 83년이다. 나이 73세의 노(老)기업인의 결단은 이랬다. “철강 1t의 부가가치는 20만원이며 자동차 1t은 500만원이다. 반도체 1t은 13억원이다. 반도체 산업을 장악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 기술 이전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쟁 업체들이 비웃었지만 삼성은 8년 만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가 됐다.



 SK그룹을 창업한 고 최종건 회장이 73년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을 인수할 때의 일화다. 10년 내리 적자를 내던 호텔을 인수하던 그에겐 정상화 복안이 있었다. 당시 논바닥이었던 서울 천호동에 레저단지를 조성하고 워커힐까지 한강을 건너는 케이블카를 설치해 손님을 유치한다는 구상이었다. 그의 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은 “단숨에 워커힐을 서울의 명물로 만들어줄 아이디어였다”며 “창업 1세대들의 경영 스케일은 이렇게 과감한 면모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계는 잔뜩 움츠려 있는 형국이다. 서울대 송병락(경제학) 명예교수는 “요즘 기업들은 안정만을 지향하면서 창업 세대의 돌파 정신이 ‘전설’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잠자고 있는 기업인의 혁신 DNA를 깨우는 것은 물론 정부 정책도 제2의 이병철·정주영 같은 영웅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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