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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넘버 2' 쓰러트린 티파티의 반란

중앙일보 2014.06.12 00:51 종합 23면 지면보기
에릭 캔터(左), 데이비드 브랫(右)
미국 정치에 지진이 일어났다. ‘화요일의 반란’으로 불린 지진의 정체는 에릭 캔터(51) 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당내 경선인 예비선거에서 패한 것이다. 상대는 무명의 정치 신인 데이비드 브랫(49)이다. 랜돌프-메이컨대 경제학 교수인 브랫은 10일(현지시간) 치러진 버지니아주 제7구역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캔터 원내대표를 55.5% 대 44.5%, 11%포인트라는 큰 차로 이겼다. 뉴욕타임스는 1994년 토머스 폴리(민주당) 하원의장이 무명의 공화당 정치 신인에게 패한 사실과 견줘 “20년 만의 대이변”이라고 전했다.


선거자금 54억 모금한 7선 거물
당내 경선서 정치신인에 참패

캔터는 본선도 아닌, 예비선거에서 탈락한 첫 하원 원내대표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캔터는 1963년생으로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40대의 나이에 다수당 원내대표를 차지한 인물이다. 7선 의원인 그는 의회 내 강경 보수를 대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저격수’로도 불렸다. 2011년 7월 사상 초유의 미 연방정부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사태를 앞두고 백악관에서 가진 담판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협상장에서 박차고 나가게 한 일도 있다. 당시 캔터 대표는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내게 ‘에릭, 날 협박하지 마’라고 외친 뒤 협상장을 나가 버렸다”고 말했다.



 그런 캔터가 패한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덜 보수적이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국 선거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선거자금 모금액을 비교했을 때 지난달 21일까지 캔터는 540만 달러(54억8000여만원)인 반면 브랫은 20만 달러(2억300여만원)에 불과했다. 그래서 아무도 캔터가 패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브랫은 공화당 강경 보수세력인 ‘티파티(Tea Party)’의 지지를 업고 대이변을 연출했다.



한때 강경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캔터가 티파티의 미움을 산 건 이민법 때문이었다. 캔터는 공화당이 큰 선거에서 이기려면 히스패닉(중남미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을 끌어들여야 한다며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이민법 타협을 주장했다. 불법 이민자라고 할지라도 선별적으로 구제해 주자는 내용이었다. 티파티는 이런 그를 변절자라고 비판했고, 브랫을 지지했다.



 캔터의 패배가 확정된 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시의 티파티 대표인 제이미 렛케는 “오늘 우리는 돈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캔터의 패인과 관련해 자신의 지역구를 돌보는 대신 전국을 돌며 공화당 다른 후보들의 선거자금 모금 행사 등을 지원해 안방 유권자들의 미움을 산 것도 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캔터의 패배가 불러올 파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의회에 보수의 바람이 불어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민법 처리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공화당 내 의회 지도부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캔터는 11월 중간선거가 끝나면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뒤를 이어 새로운 하원의장이 될 가능성이 점쳐졌던 공화당 의회 지도자들 중 ‘넘버 2’였다. 그런 만큼 베이너 의장의 유임론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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