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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바둑이다 … 승부에 지친 이를 위로하는 ‘한 수’

중앙일보 2014.06.12 00:41 종합 25면 지면보기
인생을 첫수부터 다시 두고 싶은 조폭 두목 남해(김뢰하·왼쪽)가 인생의 첫수를 망설이는 민수(조동인·오른쪽)에게 바둑을 배우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샤인픽처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2012~2013년 누적 조회수 10억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웹툰 ‘미생(未生)’은 바로 이 비유의 힘을 말해준다. ‘미생’은 매 회 한 수씩 변해가는 반상을 보여주며 주인공 장그래의 변화를 암시했다.

[문용직의 바둑 산책]
오늘 개봉하는 영화 ‘스톤’
조폭 두목과 내기 바둑꾼 얘기
반상 묘사, 프로 힘 빌려 사실적
감독은 편집 후 암으로 세상 떠나



 2000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바둑은 곧 인생이었다. 한 수 한 수 모여서 한 판을 이루듯이 삶도 결정의 연속으로 완성된다. 바둑이 영화의 훌륭한 소재가 되는 이유다. 오늘(12일) 개봉하는 영화 ‘스톤’도 그 연장선에 있다. ‘스톤’은 7월 3일 개봉하는 ‘신의 한 수’와 함께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바둑 영화다. 모두 바둑과 폭력의 대조로 영화의 얼개를 짰다.



- 주먹세계의 거칠고 험한 캐릭터로 바둑영화를 이끌었다. 왜 그랬나.



왼쪽부터 조동인·김뢰하·박원상. [사진 샤인픽처스]
“추(醜)한 조상(彫像)이야말로 영혼의 얼굴이다. 추한 현실이 없다면 굳이 영혼이 자신을 찾을 필요가 있겠나.”



‘스톤’의 조세래(1956~2013) 감독이 살아 있다면 나눴을 법한 대화다. 그는 영화 편집을 마친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3년 영화 ‘하얀 전쟁’으로 대종상 각색상을 수상하는 등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판을 누볐던 그는 아마 6단의 짱짱한 실력으로 바둑판도 살아 봤다. 험하게 살아 봤다.



바둑계는 상영을 반기면서도 바둑과 폭력이 뒤섞인 영화여서 조폭 영화로 비칠까 우려도 하고 있다. 하지만 주연을 맡은 김뢰하(49)는 “힘 빠진 두목, 인생을 후회하는 보스가 내 역할이었다”면서 “바둑을 알면서 비로소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실존의 우울을 인정하는 만큼 화면에 과장은 없다. 영화는 70~80년대 도시에 번창했던 기원(棋院)과 내기바둑을 묘사하고 주먹세계를 거칠게 그려낸다. 시대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파주시 금촌에 있는 금촌기원(영화 속 금성기원)을 찾아내 무대로 썼다. 금촌기원은 50~60대의 향수를 자아낼 만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촬영은 겨울철(2011년 11월~2012년 2월)에 했다. 주먹들이 70년대 철거민에게 자행했던 폭력 장면도 겨울의 삭막함 속에서 끌어냈다. 도시의 밝은 면 뒤에 숨겨졌던 어두운 그림자를 화면에 눈발처럼 흩뿌리기 위해서다.



반상 묘사도 사실적이다. 반상은 잘 짜인 프로의 바둑을 재현했다. 그 때문에 화면이 반상에 멈출 때엔 바둑돌이 생기 있게 다가왔다. 내기바둑 장면에서는 실제 내기바둑꾼을 써서 현실감을 높였다. 그러나 배우들의 돌 놓는 손맵시는 다소 어색해 승부사의 묘사에는 한계도 엿보였다.



회한에 잠긴 보스와 방황하는 내기꾼. 그들이 다시 시작하는 스토리. 단순한 구도라 영화는 거칠고 소박하다. 그러나 “감동을 주는 드라마이면서 즐거움을 주는 유머 코드 또한 놓치지 않았다”(로카르노영화제)는 평처럼 영화는 명계남(62·기원 원장 역) 등 개성 있는 배우를 등장시켜 생생한 대화를 유지해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바둑과 주먹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다루기에 자칫하면 나열적일 수 있었던 영화가 살아난 이유다.



상스러운 표현과 험한 액션이 적잖지만, 더해지는 리얼리티가 70년대 피곤한 바둑꾼을 그려낸다. 도시화의 소외 속에서 작은 절망에 붙잡혀 방황하는 젊은이는 어디에나 많았다. 영화와 바둑으로 떠돌던 조 감독 또한 그런 인생 중 하나였을까. 그는 바둑소설『역수』(1997)에서도 “삶 자체가 큰 승부다. 바둑의 승부에 무너지지 말라”고 청년들을 격려했는데, 아마도 그의 이야기였으리.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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