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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스포츠의 메시지

중앙일보 2014.06.12 00:14 종합 32면 지면보기
월드컵이 시작된다. 스포츠는 즐기는 것이지 과시하려 해선 안 된다. 그러나 과거 공산권 국가들은 선수들을 집단훈련시켜 국제대회에서 국가 위상을 과시하는 데 흔히 이용 했다. 맨땅을 딛고 일어나 빠르게 성장해온 우리나라도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스포츠 강국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가혹할 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으로 선수들을 메달 따는 기계로 만든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대회에서 대표팀이 거둬들이는 메달은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과 긍지를 안겨주는 동시에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경제·문화 등 여러 부문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 결과를 그때그때 체감하기 어려운 반면, 스포츠는 메달 수와 국가 순위로 극명하게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확인해주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에게 최초로 큰 감격을 안겨준 국제 스포츠행사는 1986년 아시안게임이었다. 중국에 간발의 차이로 2위에 오르면서 ‘아시아 속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2년 뒤 열린 88 서울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4위의 전적을 올리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홈그라운드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세계 속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은 우리가 ‘세계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획득한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은 ‘선진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준 쾌거였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특별한 메시지였다. 미국·중국·영국·러시아에 이어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로 5위에 올랐다. 영국이 누린 주최국의 이점을 감안하면 미·중·러 3개국은 모두 1억 명이 넘는 인구 대국, 우리 국토 크기의 수십 배가 넘는 영토 대국이다. 국토면적 세계 106위, 인구 5000여만 명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독일·프랑스 등을 따돌리고 5위에 올랐다는 것은 비록 스포츠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선진국’임을 우리 스스로와 온 세계에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경제발전, 민주발전, 한류 등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던 때의 이 쾌거는 세계인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한류를 즐길 자존심을 부여해 주었다. 아무리 대중문화라 해도 선진국 문화소비자들의 자존심으로는 자신보다 뒤떨어진 개발도상국의 것이라면 마음 놓고 즐기기엔 좀 내키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런던올림픽 직후에 터진 싸이 열풍은 세계가 대한민국에 발행해준 ‘선진국이라는 국제공인 증서’이다. 그 증서에 세월호 참사가 먹칠을 했다. 이번 월드컵이 국가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덕성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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