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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인사청문회, 세종이라면?

중앙일보 2014.06.12 00:0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지난달까지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이란 긴 이름의 직함을 갖고 있던 박현모 박사는 13년째 세종에 빠져 산다. 스스로 꼽는 필생의 공도 세종을 조선왕조실록 밖으로 꺼낸 것이다. 8년 전 낸 책 제목도 그래서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였다. 그의 세종 연구는 몇 년 전 ‘세종리더십’ 열풍을 불렀고 그때부터 그에게는 세종리더십 전도사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박사 학위는 정조 연구로 받았지만, 정조가 가장 존경하는 왕이 세종이란 것을 알고 난 후 세종에 탐닉했다. 1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세종실록을 파고 또 파면서 그는 어느 틈에 “세종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쓴 책이 며칠 전 출간한 『세종이라면』이다.



 그에게 물었다. 총리가 새로 지명됐다. 개각 인선도 본격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사청문회의 계절이다. ‘세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세종 땐 인재가 넘쳤다. 황희·맹사성, 조선조 최고 명재상도 이때 나왔다. 천재 과학자 장영실, 악성(樂聖) 박연, 한글을 만든 성삼문·신숙주, 천하 무장 김종서가 활약했다. 조선조 500년, 이때만 유독 인재가 많았겠나. 팔도를 다 뒤져 출신·단점·과거 불문, 능력자를 찾아 쓴 세종리더십, 인재 경영의 결과다.”



 그는 황희를 예로 들었다.



“황희는 서자 출신에 뇌물도 여러 차례 받았다. 간통 혐의도 있었다. 태종 땐 ‘간악한 소인’으로 지탄받았다. 많은 신하가 반대했지만 세종은 ‘그의 단점은 내가 다 안다. 단점은 막고 장점만 드러나게 하겠다’며 중용했다. 세종이 없었다면 영의정 18년, 조선조 최장수 ‘명재상’ 황희도 없었을 것이다.”



 마침 여권에선 “황희 정승이라고 인사청문회 통과하겠나”란 얘기가 나왔다. 세종이라고 별수 있었을까.



 “세종 때도 일종의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사헌부·사간원의 서경(署經)이다. 5품 이하 관리 등용 때 동의 서명을 해주는 것이다. 이발을 병조판서에 임명할 때 일이다. 허조 등이 극구 반대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이발의 국가관과 행적이 문제가 됐다. 세종은 ‘내가 그를 믿는다’며 허조 등을 설득하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세종 때 서경과 인사청문회는 많이 다르다. 허조 등 신하들의 반발과 오늘날 여론·야당의 공세는 파괴력 면에서 비교 불가다. 사상 검증과 가족사 파헤치기, 망신주기에 이르면 웬만한 내공으론 버티기 어렵다. 오죽하면 지난 정권의 정운찬 총리 같은 이는 총리실이 준비한 청문회 실전 연습 도중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총리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까. 그뿐이랴. 청문회가 부담 돼 무능한 장관을 못 바꾸는 경우까지 있다지 않은가.



 “청문회 통과가 (인사의) 목적이 돼서야 말이 되나. 세종은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라고 했다.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힐까가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했다. 청문회 통과보다 통과 후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먼저 따졌다는 얘기다.”



 인사청문회는 순기능이 더 많다. 아무나 장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게 가장 큰 공이다. 무릇 장관이 되려는 자,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써야 한다는 철칙이 자리 잡았다. 야당엔 집권당의 인사 권력을 제한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잘만 쓰면 탕평·화합의 도구로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제도든 다 좋을 순 없다. 혹독한 잣대와 검증은 가끔 능력 있는 인재 등용을 막는 걸림돌이 됐다. 그렇다고 확 뜯어고칠 대안도 없다. 제도가 더 무르익길 기다리며 다루는 사람들의 지혜와 경륜에 기댈밖에.



 “세종이라고 묘수는 없다.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종은 그렇게 했다. 인재 발탁을 위해 대신들을 끝없이 설득했다. 나라에 재난·기근이 들면 현장을 찾아 민중의 소리를 들었다. 강원도 대기근 땐 관찰사가 거짓 보고를 하자 ‘관청에 앉아만 있지 말고 백성 속으로 들어가보라’고 꾸짖었다. 소통과 설득, 그게 세종리더십을 일군 또 다른 힘이다.”



 미련이 남았다. “그래도 안 되면?” 그는 말문을 닫았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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