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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9) 제59화 함춘원시절 김동익 (30)|「국대안」 찬반으로 좌익과 격돌|46년10월에 설립, 학장엔 심호섭

중앙일보 1978.09.07 00:00 종합 5면 지면보기
함춘원사상 격동의 소용돌이속에서 혼란과 분쟁이 가장 격심했던 때는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이 발표된 전후일것이다.

사랑, 봉사, 진료, 교육, 연구의 분위기로 충만해야할 함춘원에는 돌연 증오, 갈등, 분노, 분쟁, 폭력, 「스트라이크」의 험악한 회오리가 몰아쳤다.

서울대의대 출범

이른바 국대안의 진통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함춘원은 쉽게 아물지않은 깊은 상처를 입고 한동안 신음하는 비극의 무대를 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질서를 지향하는 낡은 질서의 숙명적인 충돌이었다. 46년 여름 미군정청은 서울에 산재해 있는 관립대학등을 통합해서 국립 서울대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대한 찬반양론은 마치 쑤셔놓은 벌집같았다.

함춘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1916년 일제에 의해서 설립된 경성의학전문학교가 24년 경성제대 예과생 모집과 함께 26년 경성제대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로 나누어졌는데 국대안에 따라 다시 합병하게 된 것이다.

성대의학부측이 크게 반발했다. 서울의대(경의전)는 당시 4년제인데 어떻게 6년제 의학부와 합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또 이 두 학교에 잠재해있는 학벌대립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다 좌우익 싸움까지 겹쳐서 함춘원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특히 좌익들은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면서 분쟁을 일삼았는데 교수진을 구성기위해 조직된 자치위원회에서도, 좌익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앞서말했지만 자치위원회에는 해방당시 대학에 남아있던 소장의사들과 함께 학생대표가 참석, 교수선출에 일일이 관여했다.

나중에 드러난 일이지만 이때 좌익계열의 교수진이 끼어든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 소아과 교수로 선출되었던 이병남씨가 6·25때 북한의 보건상의 자격으로 서울에 돌아와 그전 동료교수들을 소집해서 선무연설을 한일이 있었다.

한편 국대안이 발표되었을때 성대의학부의 일부에서는 경의전측의 미군정청을 움직여서 두학교의 합병을 성립시켰다고 비난했는데 그것은 오해였지 않나 싶다. 내가 알기로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어떻든 숱한 우여곡절끝에 1946년10월 국립 서울대학교 외과대학은 역사적인 출발을 시작했다. 발족당시 교수진은 다음과 같다.

학장 심호섭, 교무과장 이제구, 학생과장 정일천, 제1병원장 명주완, 제2병원장 윤치왕, 제1내과 이정복, 제2내과 김동재, 제3내과 이돈희, 제4내과 장경, 전염병과 전종휘, 제1외과 문인주, 재2외과 김시창, 정형외과 김장성, 제1산부인과 김석환, 제2산부인과 윤치우, 소아과 이선근, 안과 윤봉헌, 이비인후과 박영돈, 피부과 오원석, 비뇨기과 최재위, 정신과 명주완, 「액스·레이」 이부현, 해부학교실 (1) 나세진, 해부학교실 (2) 정일간, 생리학교실 계종윤, 병리학 교실 (I) 윤일선, 병리학 교실 (2) 이제구, 약리학 교실 (1) 이세규, 약리학교실 (2) 오진섭, 생학학교실 이기영, 미생물학교실 허규, 위생학교실 최희영.

그러나 서울대의대호의 출범은 난항이었다. 심호섭학장은 46년10월부터 47년9월까지 만1년 재직동안 무려 10여차례나 「스트라이크」를 당했으니 혼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짐작할만하다.

학생들의 행패도 심했는데 심학장은 경의전학생대표와의 회담도중 경의전학생의 자격문제와 좌익계열제재에 불만을 품은 학생대표가 던진 재떨이세례를 받는 곤욕까지 치를 정도였다.

학생교육도 재대로 못할 지경이라고 개탄하던 심학장이 하루는 『여보 김박사, 학장 노릇하다 친구 한사람을 잃어버릴 것 같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하면서 내게 조언을 구해왔다. 혼란기대학과 병원을 수습하는데 심학장의 참모역할을 한 오원석교수와 마찰이 생겼는데 도저히 해결될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다. 성대와 경의전사이에 치열했던 학벌싸움의 일종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 있지만 나의 지론은 싸움없이 원만하게 해결하고 대동 단결하는 것이었다. 또 나 개인적으로 오로지 숙원이었던 대학교수본연의 자세에 충실하도록 노력할뿐 학벌싸움에는 추호도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심학장도 이점에서는 나와 같은 의견이어서 엄정중립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대학의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당시 그가 발휘했던 놀라운 인내심과 조정능력에 대해 지금까지 나는 경의를 표하고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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