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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27화> 불효자의 입원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09 10:37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불효 중의 상 불효라고들 한다. 지난 주말, 갑작스레 찾아온 통증에 만감이 교차했다.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몰려왔다. 이전에 겪었던 역류성 식도염 정도를 생각했다. 나이도 젊은 서른셋에 심장이 아프겠나… 착각이었다. 순환기내과를 거쳐 중환자실까지 이어지는 짧고도 긴 입원이 있을 줄은. 3일간의 입원을 통해, 암 진단 이후 고통과 고뇌를 느꼈을 아버지의 기분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들 아프다" 소리에 통증 잊은 아버지



6일 오후. 신혼집 이사를 마쳤다. 저녁을 먹고 맥주를 딱 한 캔 마시고 TV를 보고 있는데 가슴이 살살 아프기 시작한다. 오전부터 어깨에 통증이 있었다. 안 쓰던 몸을 써서 생긴 근육통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은 꽤 구체적으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두근거림이 가슴을 내리치는 느낌으로, 때로는 가슴 쪽 혈관이 빵빵해지는 느낌까지.



머리가 복잡했다. 병원 가야 하나. 머릿속에는 병원비 금액이 마구 계산기 숫자처럼 돌아가고, 고민이 좀 됐다. 응급실 갈 정도의 병인가. 그 돈이면 아내 외식을 시켜줘도 될텐데.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인 친구와 전화 통화 중 증상을 말하자, "몇 푼 아끼려다 죽는다"는 말에 택시를 탔다.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혹시 부모님이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까 싶어 잠깐 통화를 시도했다. 아버지는 갑자기 예전의 카리스마를 되찾았다.



"당장 병원으로 가라. 가까운 대학병원을 가라."



이전에도 아버지는 비슷한 카리스마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회식 후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내가 타고 있던 택시가 음주운전을 하던 20대가 몰던 차량과 부딪혔다. 택시 조수석에 앉아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뛰어오는 사람이 뼈만 앙상한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당장 뛰어나와 "아픈 사람이 뛰면 쓰러진다"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나를 동네 병원 응급실에서 진찰을 받게 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엄청나게 아픈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래도 이 병원은 적은 편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다니고 있는 병원은 극심한 응급이 아니면 타 병원으로 보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를 받아준 병원에 고마워해야 할 정도였다.



응급실에서 꼬박 12시간을 대기하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심전도, 혈압, 피검사를 기본으로, 심혈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했다. 아내는 옆에서 계속 대기하다가 잠들었다. 아내는 무슨 죄인가.



문득 어머니께 늘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나는 사업도 해 볼만큼 했고, 삶의 재미도 누릴만큼 누렸다. 이러다가 사업이 잘 안되어 망하고 또 병이 들었고. 하지만 네 엄마는 내조를 한다고 막상 삶을 재밌게 살지 못했다. 늘 엄마를 챙겨줘야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이었다. 이제 결혼했는데, 아내에게 미안한 점이 많았다. 아기도 낳고 재밌게 살고 싶었는데… 원통한 감정을 느낄 때쯤,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됐다. 7일 오전 8시. 어머니가 도착하면서, 밤새 내 곁을 지킨 아내를 얼른 친정으로 보냈다. 어머니의 읍소(?)가 통한 것인지, 진료는 전날 밤 및 새벽과는 사뭇 다른,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이어졌다.



8시에 심장 초음파를 하고, 9시에 동의서를 쓰고, 10시에 심혈관 조영술을 했다. 때마침 정규 검사 스케줄이 잡혀있는데, 자리가 있다고 했다.



이동형 침대카에 타고 수술실로 이동하는 기분은 그리 좋지 않다. 세 차례의 수술을 받은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가 세상을 떠나면 부모님과 아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어떨까. 망상에 가까운 상상이 쏟아지는 감정을 참기가 어려웠다.



시술을 마친 의대 교수님은 딱 한 마디를 했다.



"심장은 괜찮은데 살을 빼세요."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꼬박 4시간을 잔 것 같다. 이후 일반 병실에 돌아왔다. 곧 식사를 줬다. 아, 대학병원에 입원이라니. 밥 한 술 뜨다가 정말 엉엉 울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젊은 나이에 부모의 걱정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지난 몇 년 간 나의 행동이라면 열심히 일해서 빚 갚고, 아버지 병원 가시는 것 챙겨드린 것 외엔 특별한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울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눈물이 꽤 많다. 평소에 악당처럼 위악(僞惡)스럽게 말하는 나 자신이 봤다면 깜짝 놀랄만큼. 그 중에서도 어머니를 보면 눈물이 쏟아진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많다. 이번 역시 엉엉 울었다. 많은 30대 남성 독자들 역시 나처럼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감정에 대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나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다시 떠올렸다. 암이 재발했을 때, 아버지와 대학병원 푸드코트에서 같이 밥을 먹었을 때의 일이다. 해장국 두 그릇을 시켜서 먹는데,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파. 너무 아파. 그리고 서럽다."



아버지를 안아드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역시 한 평생 일만 한 대가가 암과 사업 실패라니 더할 나위없이 원통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머니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지만. 아내가 이런 내 모습을 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나는 내 아내를 지켜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머니는 통이 큰 인물이라 지켜드릴 엄두는 안 나고 잘 모시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네가 울면 내가 뭐가 되니"라던 아버지



정신을 좀 차리고,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울지 마라.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너를 그렇게 만든 내가 뭐가 되니." 어머니가 한 마디 하신 모양이다.



사실, 이것은 의료적 통계가 아닌 간호사님의 소회 정도가 되겠지만, 너무 궁금해 아픈 와중에도 취재를 좀 했다. 응급실 내 바로 옆에 나처럼 흉통을 호소하는 30대가 또 있었기 때문이다.



나: 아니, 저같은 환자가 많나봐요.

간호사: 예.

나: 의료적 판단은 아니겠지만, 저같은 사람은 진단이 뭐가 많이 나옵니까.

간호사: 협심증이 많죠. 저도 협심증 진료를 받은 적이 있고…

나: 다들 '빡쳐서' 병원 오게 되는 건가요.

간호사: 뭐 그렇죠.



물론 대다수의 병이 마찬가지지만, 흉통 역시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어머니께서는 내 흉통의 원인이 집안일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어머니와 꼬박 30시간을 함께 했다. 어머니는 하루 일을 쉬고,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 집 망하고 너와 이렇게 오래 있는 것은 처음이구나.

나: 아니 그 아픈 아버지한테 제가 운 건 왜 이야기하셨어요.

어머니: 속상해서 그랬다. 네 아버지는 너만 걱정한다. 네가 굳건한 모습을 보여야지. 처자식 생각을 해서 굳세게 버텨내거라.

나: 예. 이제는 건강 잘 챙길게요.

어머니: 차라리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너 아픈 것도 없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돌연사라도 하면 나나 네 아버지는 뭐냐. 네 아내는 뭐냐. 이번 기회로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6월 6일을 새로운 생일로 정하거라.



입을 삐죽거리면서 싫다고 했다.



짧은 입원이었지만, 소식을 듣고 찾아온 후배 김영민과 이창엽, 친구 김정열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반가웠다. "빈 손 사절"이라고 농을 치는 내 모습에, "아픈 게 조금은 가라앉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치료가 잘 되어, 연휴가 끝난 8일 퇴원했다. 병원비를 내면서 진단서에 병명을 보니 R07.3이라고 적혀있었다. 검색해 보니 '기타 통증(other chest pain)'이었다.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집에 돌아오니 나들이객이 돌아온다는 JTBC 뉴스가 TV에 나오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한 아버지는 다시 통증이 찾아온다고 말씀하셨다.



"네가 아프다고 해서 정신이 번쩍 들고 통증이 사라졌는데, 네가 좀 괜찮아지니 통증이 다시 찾아오는구나. 좀 쉬어야겠다."



행여나 무슨 일이라도 날까봐, 붙이는 진통제 두 장을 붙이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셨다는 이야기는 어머니께 이미 들었다. 그것이 모든 아버지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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