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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19명 가장 많이 살리고 … 가장 늦게 나온 담임 '쌤'

중앙일보 2014.06.09 02:30 종합 2면 지면보기
세월호 사고 54일째인 8일 시신이 수습된 단원고 유니나(28) 교사(왼쪽). 친오빠 휴대전화로 보낸 사진이다. 오빠는 “어디서 찍은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사진 유니나 교사 가족, 단원고]


8일 낮 12시20분 전남 진도 팽목항. 시신 신원확인소에서 경기도 안산 단원고 유니나(28) 교사의 오빠(31)가 나왔다. 그러곤 가족들에게 말했다. “남자 친구와 함께 맞춘 커플 링을 끼고 있네요.” 순간 유 교사의 어머니(54)는 “아이고, 우리 딸…”이라며 무너졌다. 이렇게라도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버지(58)도 눈물을 흘렸지만 평안한 표정이었다.

2학년 1반 유니나 교사, 구명조끼 안 입은 채 발견
5층 객실서 탈출 안 하고 학생 구하러 3층 내려가





지난해 2학년 6반 담임이었던 유 교사의 마지막 수업 모습. 학생들이 케이크와 머리에 쓸 왕관을 마련했고 칠판에는 ‘선생님 ♡해요. 감사합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사진 유니나 교사 가족, 단원고]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유 교사의 시신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세월호 3층 식당에서 발견됐다. 가족과 학생들에 따르면 그는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할 때 탈출할 수 있는 5층 객실에 있었다. 배가 기울자 4층 객실로 내려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그때 누군가 “3층에도 학생들이 있다”고 외쳤고 유 교사는 3층으로 향했다. 그게 학생들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구조·수색팀이 발견했을 때 유 교사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학생들을 대피시키기에 바빠 자신은 구명조끼조차 챙겨 입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유 교사의 노력 때문이었는지 그가 담임인 2학년 1반은 가장 많은 19명이 구조됐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은 사고 직후 휴대전화로 연락이라도 한 번씩 했던데 이놈은 그러지 않았다”며 “학생들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 교사는 2011년 경상대를 졸업하고 바로 단원고에 부임했다. 경남 진주에 사는 부모와 떨어져 경기도에 살면서 수시로 부모를 찾았다.



 단원고에서는 때론 일본 스모 선수 가면을 쓰고, 또 어느 때는 일본 음식을 학생들과 함께 먹으면서 수업했다. 학생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려는 노력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난 뒤 단원고 학생들은 그가 담임이었던 2학년 1반 교실 창에 “친구 같았던 선생님, 제발 다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쌤(선생님), 사랑하고 보고싶으니 빨리 돌아오세요” 등의 글을 붙여놓았다. 유 교사의 아버지는 “자원봉사자들,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들 모두 고맙다. 남은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1시20분쯤 세월호 4층 뱃머리 쪽에서 남성 시신 1구가 추가 수습됐다. 이에 따라 희생자는 292명, 실종자는 12명이 됐다.



 ◆21일부터 수중로봇 투입=세월호는 선체에 구멍을 뚫고 매트리스 같은 각종 장애물을 들어올린 상태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일단 20일까지 잠수사들이 더 확인할 수 있게 된 선체 내부를 수색한 뒤 다음날부터 40㎝ 크기의 수중로봇을 함께 투입하기로 했다. 잠수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을 수색하려는 것이다.



 한편 지난 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는 조요셉(7)군 가족 합동빈소가 마련됐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조군의 어머니 지모(44)씨와 형(11)의 시신은 침몰 일주일이 채 안 돼 수습됐고, 아버지(44)는 지난 5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서 40.7㎞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장례식장에서 조군은 헐렁한 상복을 입고 흰 뿔테 안경을 쓴 채 틈만 나면 뛰어다녔다. 가족들의 죽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외삼촌 지모(47)씨는 “고민 끝에 요셉이를 장례식장에 데려왔지만 가족의 죽음을 이해시키는 건 숙제”라고 말했다.



진도=김윤호 기자, 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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