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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69년 따로 걸어왔지만 … 베니스 사로잡은 남북 건축

중앙일보 2014.06.09 02:30 종합 6면 지면보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 선보인 한국관 전시 ‘한반도 오감도’는 남북한 건축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했다. 전시장 가운데에 서울과 평양을 대비시킨 두 장의 큰 사진이 눈에 띈다. 왼쪽 사진은 ‘세종로’(신경섭 촬영), 오른쪽은 평양 김일성광장(필립 모이저 촬영)이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세계 건축계의 시선이 한국관으로 모였다.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은 코리아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를 주제로 한 한국관이 전체 65개 국가관 전시 중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관이 1995년 세워진 이래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한국관, 베니스 비엔날레 첫 황금사자상
1940년대 평양 풍경 사진부터
2004년 서울 청계천 공사까지
"전시작 하나하나 탄탄한 정보"



 한국관 전시는 남한과 북한이 분단된 채 각기 건축물을 구축해온 69년의 역사를 조명했다. 심사위원단(위원장 프란체스코 반다린)은 “한국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새롭고 풍부한 지식을 보여준다. 놀라운 성과다”라고 평가했다.



 개막식 이후 한국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황금사자상 축하를 위해 온 건축 관계자와 관람객들, 그리고 한국관 전시를 총괄한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 커미셔너를 인터뷰하는 기자들이 줄을 이었다.



 한국관이 이처럼 주목받은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분단’이라는 역사의 특수성을 화두 삼아 한국 건축의 현실을 성찰한 작업이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한층 성숙해진 우리 문화의 역량을 국제 사회에 알린 쾌거로 풀이된다.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사진 왼쪽부터 권영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렘 콜하스 총감독, 조민석 한국관 커미셔너. [베니스=이은주 기자]
 ◆남북 건축 역사 ‘한반도 오감도’=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올해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으며 이례적으로 65개 국가관에 ‘근대성의 흡수(Absorbing Modernity):1914~2014)’라는 공통 주제를 제시했다. 지난 100년 동안의 변화를 돌아보자는 뜻이었다.



 한국관이 남북한 건축을 함께 다룬 배경이다. 조민석 커미셔너와 함께 배형민(서울시립대)·안창모(경기대) 교수가 큐레이터로 팀을 이뤘다. 총 29팀이 참여해 비디오 아트, 다큐멘터리, 사진,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조민석 커미셔너는 “렘 콜하스 총감독이 국가관에 제시한 주제 자체가 기념비적인 과제였다”며 “앞을 내다보기 위해 지난 100년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작업인데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승부수는 콘텐트의 깊이와 밀도였다. 국내외 참여 작가의 작업을 균형감 있게 엮었다. 이데올로기와 공간, 도시, 삶의 상관관계를 참여 작가 수만큼 다각도에서 보자는 전략이었다. 예컨대 미국 코넬대 건축학과 교수를 역임한 서예례가 다양한 남북 관련 활동을 다이어그램으로 시각화한 ‘액터 맵 오브 코리아’는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었구나’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건축가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남북한 관계망지도로 읽혔다.



 1940년대 평양의 풍경을 담은 외국 사진작가(블라디미르 구도프)의 사진에서부터 2004년 서울 청계천 공사 사진(안세권), 평양 아파트 개발 도면(임동우), 21년간 북한의 일상생활을 관찰해온 영국 컬렉터 닉 보너가 소장한 사진, 평양 건축가가 그린 유토피아 풍경 등이 남북한이 걸어온 다른 삶의 궤적을 되새겨보게 한다.



 ◆20년 전 백남준의 제안=95년 비엔날레에서 한국이 국가관을 마련할 때 경쟁이 치열했다. 여러 국가가 서로 국가관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한국관 설립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남북한 공동 전시를 제안했고, 그 점이 한국관 건립의 주요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 공동 전시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올해 비엔날레에서 남북한 건축을 함께 다룬 것은 20년 전 백남준의 제안을 상기시키는 전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장에서 만난 마크 라카탄스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환상적인 전시”라며 “장르의 경계를 넘어 각 작품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프랑스 건축가 세바스티앵 소안는 “전시작 하나하나가 탄탄한 정보를 담고 있다”며 “남북한 건축을 비교하며 보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한국관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권영빈 위원장은 “한국 건축의 위상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번 수상이 건축문화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니스=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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