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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의 유레카, 유럽] 에너지 독립이냐 맥주 맛이냐 … 독일, 셰일가스 딜레마

중앙일보 2014.06.09 00:50 종합 23면 지면보기
셰일가스냐 맥주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이 아닌 독일의 고민이다. 최근 독일 정부가 셰일가스 개발을 위한 프래킹(fracking·수압파쇄법) 금지 해제를 추진하면서 불거진 갈등이다. 에너지 자급도를 높이기 위해 셰일가스를 개발하자니 환경오염 때문에 독일의 자존심인 맥주의 품질이 위협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수입 의존 줄이려 셰일가스 개발
암반층에 독성물질 주입해 추출
맥주업자들 "양조용 물 오염" 반발

 프래킹은 지하 1000~1500m의 깊은 곳에 위치한 셰일층 암반에서 셰일가스를 채굴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물·모래와 함께 화학물질을 섞은 혼합물을 고압으로 주입해 암석을 깨 가스나 석유를 추출한다. 하지만 독성물질 사용으로 지하수 오염 등 환경파괴 논란이 많아 프래킹은 수년 전부터 독일에서 금지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프래킹 문제를 다시 불러냈다.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한 러시아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제대로 된 제재를 가해보지도 못한 것은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때문이었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90%가량을 수입하고 있으며 러시아 의존도는 30%가 넘는다. 이에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는 프래킹 금지를 풀어서라도 셰일가스 채굴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이다. 반면 오염되지 않은 고수질의 양조용 물이 필요한 독일 맥주업계는 환경단체들과 함께 프래킹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맥주양조협회는 프래킹이 허용되면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맥주산업의 경쟁력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 맥주 양조업자의 절반 이상은 자체 지하수원을 가지고 있다. 그중 일부는 국토의 14%에 해당하는 수자원보호지역 바깥에 위치하고 있어 프래킹 도입 시 오염이 우려된다.



 독일의 지난해 연간 맥주생산량은 94억6000만L로 유럽에서 1위다. 2위인 영국보다 배 이상 많다. 양조장만 1300개 이상 있으며 5000종 이상의 맥주를 생산한다. 2012년 매출액은 80억 유로(약 11조원)에 달했다. 1인당 맥주 소비량은 연간 107L로 체코(154L)와 오스트리아(108L)에 이어 3위다. 대표적인 맥주 축제인 뮌헨 옥토버페스트엔 연간 70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몰린다.



 1516년 4월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의 주도로 만들어진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



은 독일 맥주의 우수성과 순수성을 자랑하는 상징이다. 물과 홉·맥아(나중에 효모 발견 후 추가) 이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만드는 제조법이다. 이 때문에 프래킹으로 양조용 물이 오염되면 독일 맥주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독일 정부는 프래킹 허용을 두고 그동안 많은 토론과 함께 고민을 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좌우 대연정 정부는 올여름 의회 휴회 전에 가이드라인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최근 전했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연방하원(분데스타크) 예산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올 연말까지 법안을 의회 표결에 부칠 예정임을 밝혔다. 환경오염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셰일가스 개발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독일의 셰일가스 매장량은 2조3000억㎥로 추정된다. 내수용으로 3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본격 개발되면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독일 에너지의 자급도를 높일 수 있다.



 맥주의 나라인 만큼 독일의 프래킹 허용 가이드라인은 매우 엄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브리엘 장관은 편지에서 “식수와 건강 보호가 절대 우선”이라며 “환경을 해치는 독성 물질의 투입은 절대 금지돼야 한다”고 썼다. 셰일가스가 아닌 전통방식의 가스 채굴에도 프래킹을 금지하고 있는 독일에선 이에 대한 적절한 법적 규정이 없는 상태였다.



 프래킹이 허용되더라도 독일에서 당장 셰일가스가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은 막대한 에너지 잠재력을 가질 수 있게 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독일 하원은 중도우파 기민·기사당과 중도좌파 사민당의 대연정 소속 의원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일단 프래킹 법안이 상정되면 통과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16개 주 대표로 구성된 연방상원(분데스라트)에선 반대가 강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켈 총리는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했던 지난해 5월 프래킹을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기민당이 보덴제 호수 인근 지역의 수자원 오염 위험성이 크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장관과 같은 사민당의 유력 정치인인 하네로레 크라프트는 “내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로 있는 동안은 프래킹이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환경보호를 최우선시하는 야당 녹색당의 올리버 크리셔 원내대표는 “가브리엘의 편지에 따르면 프래킹은 수자원보호구역을 제외한 독일 전체의 86% 지역에서 가능하다”며 “이는 바로 프래킹촉진법”이라고 비판했다.



 독일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이유로 셰일가스 개발을 고민하고 있다. 영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지난 4일 의회 개회 연설에서 “산업경쟁력이나 에너지 안전보장을 위해서라도 셰일가스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영국에선 이미 프래킹 사용이 허용돼 있다. 하지만 사유지의 지하를 개발할 때 주민동의를 얻도록 한 규정 등 여러 가지 제한으로 실제로는 활발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국과 독일에서 프래킹을 사용한 셰일가스 채굴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기존의 방침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많은 양의 셰일가스 매장량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회사 셰브론은 셰일가스 매장량이 유럽에서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폴란드에서 시험 채굴을 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과도한 러시아 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미 셰일가스 개발에 들어간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타진하고 있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있다. 자체 생산 잠재력은 있지만 환경보호론자들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 쉽게 셰일가스 개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맥주와 셰일가스가 ‘윈윈’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중앙SUNDAY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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