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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즐겨 부르고 웃음 많아 소녀 같던 분 … 위안부 피해 배춘희 할머니 별세

중앙일보 2014.06.09 00:31 종합 29면 지면보기
8일 분당차병원에 마련된 배춘희 할머니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눈물을 닦고 있다. 배 할머니의 별세로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다. [뉴스1]


“‘칠갑산’을 즐겨 부르고, 웃음도 많고 그림도 잘 그리던 소녀 같은 분인데….”



 일본군 위안부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8일 운명한 배춘희(91) 할머니를 소녀라고 불렀다. 192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배 할머니는 19세 꽃 같은 나이에 일본군 정신대에 자원했다. 정신대가 뭔지도 모르고 배를 곯지 않는다는 말에 혹했다. 이후 중국 만주로 끌려가 끔찍한 위안소 생활을 겪었다.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왔으나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일본행을 택했다.



 일본에서는 아마추어 엔카(일본 대중가요) 가수생활을 하면서 고국을 떠난 설움과 외로움을 달랬다. 80년대 초반 예순이 다 돼서야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외롭게 지내야 했다. 할머니는 97년 나눔의 집 식구가 되고서야 웃음을 되찾았다.



 이후 꼬박꼬박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해 왔다.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할머니는 한·일 양국의 갈등이 높아질 때마다 안타까워했다. 안 소장은 “평소 일본 방문객이 찾아오면 통역을 자청하는 배 할머니도 일본군 피해자 문제에 있어서만은 단호하게 공식사죄가 필요하다고 늘 말씀해 오셨다”고 전했다.



 배 할머니는 지난해 9월부터 거동이 불편해져 누워 지냈다. 일본군 위안부 당시 겪은 일에 대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악화됐고 결국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지난 3월 할머니께서 ‘언제 갈지 모르지만 그동안 모두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다른 할매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고 이곳에서 행복했다’며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고 소개했다. 배 할머니는 생전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을 모아 3000만원을 김포시 중앙승가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안 소장은 “할머니들은 옆에 같이 계시던 분들이 돌아가실 때 마다 ‘다음엔 나인가 보다’라시며 너무 힘들어 한다”며 “역사의 피해자들이 살아계실 때 정부가 강력히 국제 연대나 공조를 통해 일본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할머니가 떠나면서 나눔의 집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9명 남았다. 배 할머니의 빈소는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7시30분이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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