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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 같은 … 너네 엄마가 … 막말 전화엔 진이 다 빠져요"

중앙일보 2014.06.09 00:21 경제 1면 지면보기
롯데홈쇼핑 부산 콜센터 진민경(32) 수퍼바이저는 “상담원을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한자리에서 매일 9년을 일했어요. 상담원치고는 짧지 않은 경력이에요. 많을 때는 하루 280통까지 전화를 받아봤는데 그중 절반은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했어요. 직업병요? 10년 가까이 매일같이 8시간씩 말하다보니 턱관절장애가 왔어요. 비 오거나 날이 궂으면 턱이 쑤시고 어려운 발음은 잘 안 돼 고생을 좀 했죠.

[현장 속으로] 홈쇼핑 콜센터 9년 근무한 진민경 수퍼바이저



 대학 때는 공무원이 꿈이었어요. 시험 준비하던 중 롯데홈쇼핑 부산 소비자 콜센터 상담원 자리를 소개받았죠.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는 여성 일자리가 많지 않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급여도 당시 110만원이라 일반 사무직보다 많았고요. 한데 첫 출근부터 충격의 연속이었죠. 제품 주문과 취소 신청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입사하자마자 ‘변태콜’을 받았어요. 다짜고짜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한 번만 말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며 온갖 성희롱을 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전화해 망사스타킹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묻는 고객도 있었고요. 그래도 저런 건 금방 익숙해져요. 난이도로 따지면 ‘하(下)’급 통화죠.



상담할 때는 컴퓨터·헤드셋·유선전화기는 물론 별도 기록을 위한 메모지와 필기구 등이 필요하다. [부산=송봉근 기자]
 가장 힘든 건 인신공격이에요. 상담원은 고객과 홈쇼핑사, 제품을 납품하는 기업 간 가교역할을 하는 건데 모든 책임을 저희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 다반사죠. 한 번은 2년 이상 쓰던 전기장판이 고장났다며 환불해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수리보증기간이 끝나서 환불이 안 된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내가 지금 병원에 있는데 옆 침대 애가 죽었어. 너도 애를 못 낳을거야. 독사 같은 X”이라고 욕을 하시더군요. 전화를 끊고도 온몸에 진이 빠져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죠.



 상담원들은 사실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이에요. 24시간 3교대로 일하는데 전화로 좋은 얘기 하는 분은 하나도 없잖아요. “목소리가 사악하다” “너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디?”라거나 “그러니까 상담원이나 하고 앉아 있지”라는 식으로 인격적 모욕을 하면 다음 전화를 받기가 망설여져요. 아침부터 목을 가다듬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 “네 고객님”을 연습하던 제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당장 그만두고 싶죠. 그래서 “영상통화를 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상담원들도 있어요. 설마 얼굴 보고는 이렇게까지 막말하진 않겠지 싶은 거죠.



 콜센터 상담원이 전국에 40만 명에 달한다지만 스트레스가 심하다보니 근속기간은 길어야 4년 정도입니다. 한 상담원이 자기 방을 전부 ‘키티’ 캐릭터로 도배했대요. 엄마가 “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키티는 입이 없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상담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예요. 저만 해도 무지막지하게 욕을 하는 고객들 이름을 적어놓고 매일 보면서 “내가 그만두면 너한테 똑같이 할 거다”라며 이를 갈곤 했거든요.



 10년 가까이 있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고객들이 노련해지고 사회가 각박해진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엔 떼를 쓰거나 욕하는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무조건 “윗사람 바꿔”부터 시작하죠. 단순 고객 변심으로는 환불이 안 되니 일부러 멀쩡한 제품을 찢어오거나 먹던 음식에 머리카락을 넣고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욕을 계속 퍼부어 상담원을 화나게 한 후 “불친절하다”며 환불받으려는 유형, 안 바꿔주면 인터넷에 올린다고 협박하는 고객 등 다양하죠.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는데도 늘 긴장돼요.



 20대 초반의 나이에 입사해 동료들보다 진급이 1~2년 늦었으나 끈기로 버텨냈어요. 그러다 보니 2009년 수퍼바이저로 승진해 이른바 “윗사람 바꿔”의 그 윗사람이 됐고요. 밥통이 갑자기 뻥 터져 사고가 났다거나, 블랙컨슈머 리스트 고객이 집요하게 항의한다거나, 우리 상담원이 불친절하게 대답해 일이 커진 사례 등 일반 상담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강성 민원을 처리하는 게 제 일이죠. 예전처럼 하루 200통 넘는 전화를 받는 일은 없어졌지만 강도는 더 세진 셈이죠.



 저보단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들을 보면 더 걱정돼요. 걸려오는 전화는 많은데 응대하는 말의 내용만 봐도 그들이 어떤 내용, 얼마나 거친 톤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있거든요. 이런 여유까지 생기다니 고참은 고참인가 봐요. 세월은 9년이나 지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콜센터 상담원을 대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졌다고 할 만한 게 없네요. 그래서 한두 해 일하다 그만두겠다는 동료들을 선뜻 붙잡지 못합니다.



 그래도 보람을 느낄 때가 있어요. 문제를 해결했을 때, 고객들이 “목소리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고 “친절하게 대답해 줘 고맙다”고 말씀하실 때요. 한 번은 고객이 한 달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있는 대로 화를 냈고 상담원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말다툼한 적이 있죠. 아무리 고객이 먼저 화를 냈다 해도 우리 쪽도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서 고객 댁을 직접 찾아갔어요. 고객이 과일과 차를 잔뜩 내어오시면서 “앞으로 좋은 소문을 내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린 스스로를 사회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해요. 경기침체나 대형사고·집단우울증 같은 게 생기면 가장 먼저 느껴요. 오갈 데 없는 분들, 위로받고 싶은 소외계층에 계신 분들이 전화를 많이 하시거든요. “나이 60이 넘으니까 노력해도 일자리가 없다”고 만취해 하소연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잘 들어보면 결국 문제는 제품이 아니라 그분이 처한 상황인 경우가 많죠.



 쉽진 않지만 이 일 계속하고 싶어요. 다만 고객들이 우리도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서로 기본만 지키면 마음을 덜 다치며 일할 수 있는데 쓰레기통을 대하듯 막말을 쏟아내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정리=채윤경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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