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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한옥 살렸어요, 동네도 살아났어요

중앙일보 2014.06.09 00:05 경제 2면 지면보기
4일 서울 인사동 ‘관훈재’에서 김장권 북촌HRC 대표가 2층 한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관훈재는 전통적인 낮은 나무 난간을 쓰는 대신 유리 난간을 덧대 법적 기준(난간 높이 1.2m)에 맞추고, 곳곳에 ‘풍요’와 ‘다복’을 기원하는 거북이나 포도를 조각했다. [김상선 기자]
이달 4일 서울 인사동 거리. 쌈지길 입구 직전에서 왼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한옥 한 채가 나타난다. 흔히 볼 수 있는 단층 한옥이 아닌 이층집이어서 눈길을 끈다.


[연중기획] 퍼스트 펭귄 (17) 전국에 한옥 200여 채 건축, 김장권 북촌HRC 대표

2년 전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사대문안에 신축된 2층 한옥 ‘관훈재’다. 서울시에 등록된 최초의 2층 한옥집이기도 하다.



 대지 면적은 109㎡(33평). 마당까지 있어야 하는 한옥을 넓게 펼쳐 짓기엔 좁고, 2층으로 올리자니 보기에 위태하다. 북촌 HRC의 김장권(51) 대표는 “작은 마당인 ‘중정’에서 답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1층보단 두 걸음 높고, 2층보다 일곱 걸음이 낮아 안정적으로 두 층을 이어준다. 위에서 보면 ‘ㄷ’자 형태여서 한옥 특유의 산봉우리를 닮은 지붕선도 살려냈다. 운현궁에서 빗물을 받아내기 위해 설치했던 ‘목챙’을 달았고, 채광을 위해 지붕 중 일부를 강화유리로 처리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 건물을 짓고 나서 3년간 2층 한옥만 10여 채를 더 지었습니다. 그중엔 관훈재 2층에 있는 찻집 ‘목향’에 들렀다가 한옥집을 짓겠다고 찾아온 손님도 계셨죠.”



 김 대표는 한옥만 15년을 지은 ‘한옥 건축 전문가’다. 한옥을 한 채 짓는 데는 6개월에서 2년까지도 걸리는데, 이렇게 지은 한옥이 200여 채가 넘는다. 한옥은 문화재 복원이나 평당 3000만원 가까이 하는 최고급 단층주택에 국한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상업 용도로 쓰이는 중층(여러 층) 한옥이야말로 앞으로 10년간의 신성장동력”이라고 말하는 ‘한옥 실학자’이기도 하다.



 100년 넘게 한국 건축 역사에서 사라졌던 2층 한옥도 그런 철학을 바탕으로 지은 작품이다. 고려시대부터 상업용이나 문루로 널리 지어졌던 2층 한옥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됐고, 위층 난방이 불가능 하다는 특성 때문에 신축도 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서울처럼 땅값이 비싸고 좁은 도심에선 여러 층(중층) 한옥의 장점이 크다”며 “난방이 되는 1층은 주거층, 2층은 서재 같은 생활시설이나 공방·작업실로 많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한옥 건축가가 되려던 건 아니었다. 김 대표는 사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20대를 부친의 무역회사에서 보냈다. 사업수완이 있는 편이어서 일찍부터 컴퓨터 회사며 인테리어 회사를 인수했다. 건축과의 인연은 인테리어 회사를 직접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일은 재미있었는데 한 달 단위로 짧게 돌아오는 공사 기간이 스트레스였다” 고 회상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건물하나에 6개월은 족히 걸리는 건축사무소다. 처음엔 여느 사무소처럼 ‘RC조’라 불리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주로 지었다. ‘하이바(작업장용 안전모)’를 쓰고 십장(현장 감독) 노트를 만들어가며 보낸 지 3년차 즈음 외환위기가 왔다. 건축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가운데 한옥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진입 장벽은 높지만 자리만 잡으면 기회가 많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한옥 활성화정책’이 시작됐다. ‘웰빙’ 추세와 맞물려 불기 시작한 한옥 바람은 조선시대 부촌으로 한옥 명맥을 이어오던 북촌을 시작으로 인근 원서동과 계동·인사동까지 번졌다. 김 대표는 “최근엔 서울 은평구나 경기도 판교같은 택지 지구에서도 한옥을 신축한다”며 “지금은 제부도에 한옥으로 된 미술관을 지을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수요가 늘어나는 걸 체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전과 달리 고건축을 하겠다는 건축가도 늘어나는 추세다. 김 대표는 “우리 사무소만 해도 5명의 식구가 있는데 처음 뽑을 때는 경쟁률이 100대 1에 달했다”고 밝혔다.



 주택을 지으려고 알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옥은 비싸다’고 입을 모은다. 김 대표도 “단층집이면 부지도 넓어야 하고, 자재도 좋은 걸 써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동의했다. 한 채를 지으려면 얼마나 들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옥을 신축하는 데는 못해도 지금 시세로 평당 1500만원이 들었다.



예전 같은 단층 한옥을 지으려면 부지도 넓어야 하니 집 한 채에 7억~8억원은 드는 셈이다.



 북촌HRC가 짓는 한옥의 가격은 어느정도일까. 김 대표는 대뜸 “굳이 한옥에 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건축주들은 공통적으로 ‘마음이 편하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집’을 꼽는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한옥의 구조와 설계도 실제로 그 집에 살게 될 건축주와

최대한 상의해서 정하고, 거기에 맞춰 가격도 책정한다. “건축가의 색을 빼고 건축주의 색을 입히는 게 한옥인데 무조건 평당얼마라고 정해놓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손님이 대충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아주 저렴하게는 평당 600만~700만원, 중간 수준이 1000만~1500만원, 그리고 고급건물은 200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다. 대신 “한번 지은 한옥은 최소한 150년은 유효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은 지 30년이 되면 노후 건물이라고 부수는 아파트와는 달리 3대가 머물러 살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오래 가는 건물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위 ‘학사 주점’ 같은 한옥이 양산 될 가능성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요새 한옥의 건축비를 낮추기 위해 모듈화 도입 등 이 논의되고 있어 새로운 형태의 한옥이 보편화될 수도 있다”면서도 “자연과 사람을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한옥은 일반 콘크리트 건물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전통의 외형을 본뜨는 게 아니라 시대성을 담아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한옥 양식을 따르되 보안이나 단열, 가족 구성원 수의 변화를 고려한 집을 짓는다. 그는 “예를 들어 경복궁처럼 한옥을 길게 짓다 보면 창문이 많아지는데, 요즘 세상에선 보안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같은 주거용 한옥을 짓더라도 부지 상황에 따라 건물을 ‘ㄱ’자나 ‘ㄷ’자로 꺾고, 이중 창호나 단열 필름을 써

열을 가두는 식이다.



 사람 많고 건물 빽빽한 도시 생활에서 한옥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김 대표는 “한옥은 도시가 아니라 자연을 따르는 집”이라며 “사람이 도시에서 잃어버렸던 생각이나 소리의 여백을 한옥이 되찾아준다”고 답했다. ‘좋은 집’은 비싼 집이 아니라 본래 주거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층간소음 같은 사회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김 대표는 8년 전 자신의 사무실 역시 북촌 초입 길에 위치한 한옥으로 마련했다. 초인종 소리나 천장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 대신, 마당에 들어서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가득한 집이다.



글=조혜경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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