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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 굶어 죽은 대기근…19세기 아일랜드에 무슨 일이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09 00:05
일러스트=김두연


햇감자가 나기 시작하는 초여름이다.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인 감자는 에스파냐 침략자들에 의해 16세기경 유럽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순조 시절인 1830년을 전후해 청나라를 거쳐 들어왔다. 감자는 저온에서도 잘 자라고 짧은 기간에 수확량이 많아 흉년에 먹는 구황작물로 널리 보급됐으며, 주로 빈민들의 주식이었다. 그러다 병이 돌아 감자마저 먹을 수 없게 되면 기근이 발생했다. 마리타 맥케너의 『산사나무 아래에서』는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1845~1852년 ‘아일랜드 대기근’을 담은 아동 역사 소설이다.

[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37> 산사나무 아래에서



감자마름병 때문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일랜드 어느 마을. 역병마저 번졌다. 주인공 에일리의 막내 동생은 병에 걸려 집 근처 산사나무 아래에 묻혔다. 공공 근로사업에 나간 후 소식이 끊긴 아버지를 찾으러 간 어머니마저 돌아오지 않자, 아이들은 수용소로 끌려갈 처지가 됐다. 12살 에일리는 동생 마이클과 페기를 데리고 수용소로 가는 길에 탈출한다. 멀고 먼 친척집까지 걸으며 아이들은 기근의 참상을 생생히 목격한다. 굶주린 아이들은 마침내 이모할머니댁에 도착해 보살핌을 받는다.



유럽사에서 보통 ‘대기근’이라 하면 ‘아일랜드 대기근’을 의미할 정도로 끔찍했다. 직접적 원인은 감자마름병이었지만 100만 명의 사람들을 굶어 죽게, 100만 명의 사람들을 이민을 가게 한 것은 정치·인종·경제·종교적 문제들이었다. 아일랜드는 12세기 이래 영국의 침략을 받았다. 크롬웰은 1652년 아일랜드 식민법을 만들었고, 전체 경지 3분의 2는 영국인 지주 소유가 됐다. 아일랜드 농민들은 ‘하얀 검둥이’로 불릴 정도로 비참한 소작인 생활을 했다. 영국이 대부분의 밀을 가져갔기에 가난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17세기 초부터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다.



감자마름병으로 기근이 들고, 역병마저 돌았지만 영국 지배자들은 제대로 구제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게으르고 미개한 탓이라며, 심지어 신의 징벌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군대를 동원해 아일랜드의 밀을 실어 날랐다. 당시 영국이 가져간 매년 50만여 톤의 밀은 아일랜드의 굶주린 사람들 전체를 먹일 수 있는 양이었다. 영국인 대지주들은 세금을 못 내는 아일랜드인들을 강제로 내쫓기까지 했다. 쫓겨난 사람들은 빈민구제소까지 걸어가다가 굶어 죽거나 병에 걸려 죽었다. 종교 기관의 후원을 받은 구제소는 죽 한 그릇 주면서 개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전 유럽에 감자마름병이 유행했지만 유독 아일랜드에서만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이유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지배자들의 잘못된 대처로 확대된 인재(人災)였다.



산업혁명이 영국사에, 대혁명이 프랑스사에서 갖는 의미만큼이나 대기근이 아일랜드 역사에 갖는 의미도 크다. 대기근 이후 영국 지배자에 대한 반감은 더욱 높아졌다. 1922년, 마침내 아일랜드는 독립전쟁을 통해 700년간의 영국 지배에서 벗어나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 공화국을 수립했다.



“당신들은 장님이오? 여기 굶어 죽어 가는 동포들이 안 보입니까?” 『산사나무 아래에서』 중 굶주린 사람들을 외면하고 곡물 수출을 호위하는 군인들에게 외치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재난의 진정한 원인은 그런 재난을 가능하게 했으며, 재난 발생 시 신속히 구제에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따지며 외면한 대처 기관 전체에 있다. “당신들은 안 보입니까?”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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