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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해 본 중학생 82.3% "근로계약서 쓴 적 없어요"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09 00:05
청소년 유니온 회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노동 인권 교육’ ‘고졸 취업자에게 양질의 일자리 제공’ 등의 정책 요구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스1


한국은 아동 노동이 법으로 금지된 나라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만 15세 이상이 돼야 한다. 만 13~14세 청소년은 고용노동부에서 취직 인허증을 받은 경우에만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4살 중학생이 불법 택배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는 현장이 한 방송 뉴스에 보도되며 이슈가 됐다. 14살 소년은 남의 주민번호를 훔쳐서 일자리를 구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하루 12시간 일을 해 손에 쥔 돈은 최저 임금(시간당 5210원)에도 못 미치는 5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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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실태 연구’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알바를 해 본 중학생은 6.5%로 2011년의 5.4%보다 늘어났다. 중학생 알바생의 12.5%는 약속한 임금보다 덜 받거나 아예 못 받은 적이 있고, 13.7%는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일했다. 일한 곳의 환경이 불결하고 위험했다는 응답은 13.4%에 달했다. 구타나 폭행을 당했다는 답변도 11.1%나 나왔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근로계약서를 쓴 경우는 17.7% 뿐이었다. 고교생이라고 해서 형편이 더 나은 건 아니다.



채모(18)군은 배달 대행업체에서 알바를 뛴다. 대행업체는 주문이 들어오면 알바들에게 배달 갈 곳을 나눠준다. 채군은 식당에 가서 자신의 돈으로 음식값을 치른 뒤, 주문한 손님에게 음식값에다 배달 수수료 2500원을 더해 돈을 받는다. 오토바이 대여료와 기름값은 채군 부담이다. 배달 도중 주문이 취소되어도 음식값을 돌려받지 못한다. 음식점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서다. 채군은 배달이 늦어지면 손님이 주문을 취소할까봐 역주행이나 신호위반까지 해가며 위험하게 운전한다. 지난 1년간 교통 사고만 4~5번 났다. 사고가 나면 수리비도 자신이 부담한다.



차모(17)양은 호텔연회장 서빙 알바를 한다. 호텔이 직접 알바생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구인사이트가 대신 사람을 모으는 게 일반적이다. 막상 당일 약속된 시간에 현장에 가보면 호텔 측에서 사람이 넘친다며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있다. 호텔에선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쟁반은 쓰지 못한다. 뜨거운 접시를 손으로 들고 나르기 어려워하는 알바생에게 호텔 직원들은 “그릇을 깨면 너희가 다 물어내야 하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임금도 다 받지 못했다. 차양이 항의하자 구인사이트측은 타행 이체 수수료 500원을 빼고 나머지 돈을 입금해줬다.



채군과 차양의 경험담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지난 3월 발표한 ‘십대 밑바닥 노동 실태 조사’ 보고서에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패스트푸드점·편의점·주유소 등의 사업장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경제 위기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진 20대 청년과 장년층이 그 자리를 차지해서다. 청소년은 대신 노동법의 단속이 미치지 않는 ‘밑바닥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보고서는 채군 같은 배달 대행, 차양 같은 서빙 알바 외에도 ‘지옥 알바’라 불리는 택배 물품 차에 싣고 내리기, 길거리 이벤트 홍보 등이 대표적인 청소년 노동이 되고 있다고 밝힌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유해환경접촉 종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고교생이 게임업장·숙박업소 등 청소년을 고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곳에서 알바를 해 본 경험률은 2011년 3.4%에서 2012년 8.3%로 늘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청소년이 일하는 919개 사업장 중 근로 조건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업체만 538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은 곳도 119개에 달했다.



지난 2월엔 국내 최초의 청소년 노동조합인 청소년 유니온(blog.naver.com/youth1524)이 출범했다.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청소년 알바생의 권리 찾기, 특성화고등학교 현장 실습 문제 개선 등에 청소년이 직접 나선 것이다. 청소년 유니온은 출범선언문에서 “삼각함수와 구운몽의 주제의식은 가르치면서 일터에서 월급 떼이지 않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성인이 된다 한들 스스로 노동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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