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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로 나온 숨은 돈 … 양곤엔 차 넘쳐 도로가 감당 못 해

중앙선데이 2014.06.08 00:13 378호 12면 지면보기
미얀마 양곤 중심가에 위치한 쇼핑몰 ‘정션 스퀘어’ 내부. 한국의 중급 수준인데 가격은 서울과 비슷할 만큼 비싸다. 그래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숨은 돈’이 개혁·개방 이후 소비로 몰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 아산정책연구원]
6일 정오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중심 레단 거리에 있는 4층짜리 쇼핑몰 ‘정션 스퀘어’에 들렀다. 지난해 5월 개장한 이곳은 서울의 중급 쇼핑몰 정도지만 미얀마에선 최고를 자랑한다. 여성 샌들이 최고 2만 차트(약 2만원), 핸드백 2만3000차트, 보시니 청바지 3만 차트, 조르다노 난방 4만9000차트, 휴대전화 삼성 갤럭시노트 67만 차트, 여성 립스틱 2만 차트. 시티몰의 식품점에서 닭 한 마리가 7047차트, 계란 한 꾸러미가 1300차트였다.

[미얀마 르포] 개혁·개방 2년의 현장을 가다

건물 옆엔 미얀마 1호 롯데리아가 있다. 불고기버거 세트와 새우버거 세트를 시켰다. 각각 3900차트인데 세금 포함, 8085차트다. 시내 중심가의 샤브샤브 식당 세카옹, 중식당 골든덕엔 저녁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붐빈다. 1인당 1만5000차트 정도 든다.

서울과 큰 차이가 없어 가격에 저항감이 없다. 그러나 미얀마는 201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를 막 넘은 나라다. 한국 1인당 GDP의 5% 수준인 미얀마의 물가가 서울과 비슷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뿐 아니다.

이날 오전 숙소인 세도나호텔에서 아웅산 국립묘지로 가는데 교통 체증 때문에 꽤 막혔다. 매연을 뿜는 50년 된 차와 깨끗한 도요타·닛산 같은 일제 차들이 뒤섞여 도로를 점령 중이다. 람보르기니·페라리·벤틀리도 보인다. 주말인 7일도 시내 네거리는 꽉 막혔다.

현지인과 현지 한국인들은 “2년 전부터 자동차 수입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자동차 수요는 이미 도로 수용 한계를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래서 정부가 통관수속을 늦추고 있으며 지금 항구엔 수만 대가 대기 중이란 말도 있다. 국산 EF쏘나타의 가격은 3만 달러(약 3000만원) 정도다. 한때 1억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부동산도 춤을 춘다. 현지에서 만난 양곤 시민들은 “일본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2~3년 전쯤 월세 300달러 했던 100㎡ 아파트 임대료는 1000~2000달러로 올랐다. 5000달러나 되는 곳도 있다. 시내 사쿠라 타워의 60㎡ 사무실의 월 임대료는 7000달러다. 신공항이 들어선다고 소문난 시내 북부 바고 지역의 땅 값은 에이커(약 4000㎡)당 30만원쯤에서 호가 1000만원으로 치솟기도 했다.

양곤에선 돈이 춤을 춘다. 동남아 최빈국 미얀마에서 2012년부터 나타난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차적으론 국내에 축적된 ‘얼마인지 모를 많은 돈’이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계기로 급속히 양성화된 것이란 분석이 있다.

2011년 3월 미얀마에 테인 세인 신정부가 출범한 뒤 제한적 민주화 정책을 펴면서 서방의 경제 제재도 단계적으로 해제되기 시작했고 경제 분야에도 개혁·개방이 접목됐다. 그 뒤 연 7%의 GDP 고속성장세를 보였다. 올해 증가율은 7.75%로 예상된다. 정부는 10년 뒤 1인당 GDP를 2000 달러로 두 배 끌어올린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이런 흐름이 소비를 자극한 것이다.

한 한국 기업 주재원은 “과거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이 수출되면서 많은 자금이 지하로 들어갔다. 이 돈이 개혁·개방 뒤 구매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한국 교포는 “금융이 발달 안 된 이 나라엔 집마다 금고가 있고 방 전체를 금고로 만들기도 해 돈과 금을 쌓아 두는데 이 자금이 차를 사고 쇼핑하는 데 몰린다”고 분석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6일 ‘한·미얀마 관계의 미래’ 세미나에 참석한 60대의 미얀마 학자가 “교통 체증은 민주화의 결과”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다.

게다가 요즘 미얀마가 ‘큰소리치며’ 받아들이는 외국투자도 큰 영향을 준다. 미얀마 투자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누적 외국투자는 465억 달러다. 중국이 142억 달러로 최대 투자국이며 이어 태국(101억 달러)·홍콩(65억 달러)·싱가포르(47억 달러)·영국(31억 달러)·한국(30.7억 달러) 순이다.

천연자원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미얀마는 ‘자원 백화점’이라 불리는 나라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약6조5000억㎥. 루비는 전 세계 생산량의 99%를 차지한다. 보석이 많아 아시아의 진주로 불린다. 광물 매장량은 2012년 기준으로 철광석 7.2억t, 석탄 3.9억t, 구리 11억t, 우라늄 40만t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선진국의 경제 제재와 투자 회피로 개발이 안 됐는데 이제 상황이 좋아져 투자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더 깊게는 ‘전략적 이익’ 때문이다. 남진정책을 펴는 중국에 미얀마는 서남아 연결의 길목이자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이다. 그래서 중국은 투자 외에도 6억 달러 차관도 제공하겠다고 한다. 일본은 2012년 4월 미얀마의 대일 부채 3000억 엔(약 3조원)을, 2013년 2000억 엔을 탕감한 뒤 400억 엔을 무상 원조하고 510억 엔의 신규 차관을 제공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취임 뒤 상반기에 미얀마를 포함한 아세안 10개국을 순방했고 하반기에는 10개국 정상을 초청했다. 그 뒤엔 아시아 회귀정책을 펴고 중국의 대양 진출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있다는 분석을 한다.

이백순 대사
양곤 주재 이백순 한국대사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얀마가 왜 중요한가.
“이 나라의 폐쇄정책은 동남아 경제권과 인도 서남아 경제권의 연결을 막았다. 그런데 개혁·개방은 장애물을 해소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 하이웨이 건설이 진행 중인데 인도는 미얀마 동부 국경에서 내륙까지 100㎞를, 태국은 서쪽에서 내륙까지 100㎞를 건설하고 나머지는 미얀마가 맡는다. 이 도로는 중국이 건설하는 철도와 함께 미얀마를 ‘X자’로 가로지르며 동남아~서남아 경제권을 연결하는 물류망을 만든다. 미얀마 주변엔 20억이 넘는 인구가 있다. 그래서 인건비가 싸고 노동력도 양질인 이곳에 생산기지를 만들면 한국에 좋다. 그럼에도 한국은 미얀마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일본과 중국의 진출 양상은.
“중국은 미얀마 북서부를, 일본은 동남부를 장악하는 형태로 경쟁한다. 일본은 철도·도로·항공에, 중국은 자국과의 가스 파이프, 철도 연결, 전기 생산을 위한 댐 건설에 집중한다. 일본은 범정부 차원으로 나서고 있다. 미얀마 남서부 국경지역인 다웨이와 태국의 방콕을 잇는 철도도 건설한다. 한국의 1년치 미얀마 공공개발원조(ODA) 예산을 한 달에 쓸 정도다. 일본은 미얀마의 산타클로스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믈라카해협이 미·일에 봉쇄될 가능성을 걱정한다. 그래서 중국 남부 도시 쿤밍으로 연결되는 가스 파이프를 건설했고 원유 파이프 사업도 진행 중이다. 양곤 서북쪽 시트웨항도 심해 항구로 개발 중인데 인도도 관심을 기울인다. 건설되면 안다만해의 허브로 커진다. 파이프 라인을 따라 고속도로까지 건설하게 되면 미얀마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지도층은 중국 종속을 걱정하지 않나.
“중국이 36억달러를 들여 북서부에서 진행하던 (밋손) 댐 건설 프로젝트들을 중단시킨 것이 한 사례다. 환경, 농토 보존, 주민 보상 같은 문제를 이유로 댄다. 원유 파이프 건설도 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중국은 고위급 인사를 보내 문제 해결을 위해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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