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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Shot] 책 50만 권의 보금자리 늘 깨어있는 ‘지혜의 숲’

중앙선데이 2014.06.08 00:36 378호 16면 지면보기

한 권의 책도 나름의 일생을 산다. 저자가 정성 들여 쓴 원고는 편집과 제작을 거쳐 독자의 손에 들어갔다가 서가 깊숙이 자리 잡는다. 책으로서는 행복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책이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은 이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 “책이 너무 많이 만들어집니다. 반품되는 책이 40%나 됩니다. 좋은 책들이 한 번 펼쳐지지도 못하고 분쇄기로 들어가죠. 학자들은 퇴임하면 평생 모은 책들을 보관할 공간이 없습니다. 손때 묻은 귀한 책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그런 책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로 했다. 파주출판문화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과 지식연수원 지지향 로비에 ‘지혜의 숲’이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출판도시의 출판사들이 창사 이래 출판한 모든 책을 한 권씩 기증했다. 교수·학자 26명도 소장도서를 맡겼다. 대만 최대 출판사인 연경도 모든 출간도서를 한 권씩 보내 왔다. 50만 권을 꽂을 수 있는 서가에 벌써 20만 권이 들어찼다. 기증한 책만으로 거대한 책의 숲이 조성됐다.

겉모습은 도서관이지만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많이 다르다. 김 이사장은 지혜의 숲을 ‘종합적으로 책을 읽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고전적 서가 정리법인 십진분류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도서관에 익숙한 분들에겐 불편하겠죠.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하자면 높은 안목이 필요합니다. 숲을 거닐다 숨어 있는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 보기 바랍니다.”

도서관 형태지만 사서는 없다. 대신 권독사(勸讀司)가 있다. 주로 은퇴한 학자들이 맡게 되는 권독사는 방문자에게 책을 추천하거나 찾는 일을 도와준다. 현재 30명을 선발해 교육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활동도 벌어진다. 책을 기증한 이들이 인문학 강좌를 하고, 저자와 독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음악회도 연다. 문화운동을 위한 열린 학교인 셈이다.

지혜의 숲은 365일, 24시간 개가식으로 운영된다. 공간은 넓고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 책을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는 말도 있으니 새 주인을 찾아갈 책도 일부 있을 터. 김 이사장은 “책도 생성소멸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으니 빈 공간이 생기면 다시 채워 넣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열린 공간이다. 19일 개관한다. 031-955-32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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