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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통째로 바꿔드립니다” … 이웃돕기에서 지역 개발까지

중앙선데이 2014.06.08 00:41 378호 18면 지면보기
가파도.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섬이다. 면적은 0.9㎢. 대략 18홀짜리 골프장과 엇비슷한 크기로 인구는 240명(2012년 기준)이다. 작은 섬이지만, 긴 역사를 가졌다. 1653년 하멜의 『하멜 표류기』엔 ‘케파트(Quepart)’란 이름으로 소개됐다. 가파도는 매년 4월 중순부터 열리는 청보리 축제로 유명하지만 구태여 찾을 이유가 없는 섬이기도 하다. 제주도 모슬포 항에서 배편으로 20분가량 가야 하는 교통의 불편함이 우선 그렇다. 국토 최남단이란 명칭은 마라도에 넘겼고, 별다른 관광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청보리 축제 기간을 전후해 관광객(연 6만 명)이 반짝 드는 이유다.

진화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

지난 4월 방문한 가파도엔 해안선을 따라 시멘트로 길이 닦여 있었다. 유려한 시멘트 길은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해쳤다. 대신 시야를 가리는 큰 나무나 건물이 없어서 섬 중앙부에서도 수평선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검은 현무암 돌담과 싱싱함을 더하는 푸른 보리 싹이 주는 풍경은 황홀감을 줬다. 날이 맑을 때면 바다 건너 제주 성산일출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주민은 해마다 줄어든다. 어업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다 관광객이 드는 것도 청보리 축제 기간뿐이어서 안정적인 소득기반을 갖출 수 없어서다.

예술 섬으로 거듭날 제주 가파도
주민들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섬 개발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을 때 개성 있는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유명한 현대카드가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현대카드와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5월 양해각서(MOU)를 맺고 ‘가파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반짝 관광객’이 드는 가파도를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영감의 섬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남들과 똑같은 사회공헌은 하지 않는다’는 정태영(54)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의 철학에서 출발했다. 그는 “다른 곳에서 하는 사회공헌을 그대로 베끼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해왔다.

1년여 숙고 끝에 양측은 가파도를 ‘지속가능한 친환경의 섬’으로 바꿔내기로 했다. 대규모 이벤트와 디자인 등에 일가견이 있는 현대카드가 섬 개발의 컨셉트를 잡고 실행비용은 제주도 측이 부담한다. 프로젝트의 기본 골격은 이미 나왔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식의 개발을 피하고 가파도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여기에 예술적 감성을 더하기로 했다. 친환경을 표방한 만큼 주민 활용도가 낮으면서 자연환경을 해치는 도로는 걷어내고 생태환경을 복원하는 걸 시작으로 삼는다.

섬 곳곳에 있는 공터와 빈집은 원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유치 예정인 예술인 마을의 주거지로 바꿔낼 예정이다. 특산물인 청보리를 활용한 맥주 양조시설도 들어선다. 여기에 각종 농산물 가공 공장과 담수화 시설이 갖춰진다. 마을 중심의 폐가엔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마이크로 하우스 수십 세대를 갖춰 텅 빈 마을이 아닌 사람이 북적북적한 섬 마을로 키워낸다는 계획이다.

가파도 프로젝트는 ‘친환경 섬 개발’이란 말로 요약된다. 개발이라고 하면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새로 건물을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기존 개발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일본과 영국을 비롯한 해양강국에선 이미 익숙한 개념이다. 일본 가가와(香川)현의 섬인 나오시마(直島)도 유사한 방식으로 경제 활성화와 친환경 개발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예술 섬’으로 유명한 나오시마의 섬 주민은 32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60만 명에 달한다.

나오시마의 상징이 된 일본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왼쪽)과 데시마 미술관. 최정동 기자
사실 나오시마의 과거는 가파도의 그것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어둡다. 나오시마는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중후반 산업폐기물을 버리던 곳이었다. 지금도 동북아 최대 규모의 금 제련 공장이 가동 중이다. 하지만 곳곳에 갖춰진 미술관과 예술작품, 그리고 잘 가꿔진 섬 정경은 이곳을 ‘예술 섬’으로 탈바꿈시켰다. 현대카드가 가파도 재건에 나선 것처럼 이 지역 출신인 후쿠다케 소이치로(69) 베네세 홀딩스 대표가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 등 유명 예술가와 손잡고 나오시마를 폐기물이 아닌 사람이 살기 좋은 섬으로 바꿔냈다. 현대카드 민운식 홍보팀장은 “나오시마는 기업의 의지가 황폐화된 지역사회를 어떻게 재건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기업이 쌓아온 역량을 잘만 발휘하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재래시장 재건 나선 신세계그룹
‘디자인’에 노하우를 가진 현대카드가 가파도 삶의 여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 착수했다면, 유통업의 강자인 신세계그룹은 재래시장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부터 점포 인근 전통시장과 협약을 맺고 다양한 상생방안을 내놓고 있다. 영업 환경이 열악한 재래시장 내 매장을 선정해 리모델링해주는 ‘희망가게 만들기’ 사업이 대표적이다. 시설 리모델링뿐 아니라 상품 진열과 고객 응대법 등 ‘장사하는 법’ 자체를 알려주고 있다.

신세계 광주점 인근 양동시장에서 야채상점을 운영 중인 박정현(오른쪽)씨 부부의 모습. 박씨의 가게는 신세계의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마친 뒤 매출이 20% 가량 늘었다. [사진 신세계그룹]
성과도 나온다. 신세계 광주점 인근의 양동시장이 대표적이다. 신세계 측은 지난해 백화점 직원들을 한 달여간 ‘미스터리 쇼퍼’로 투입해 시장 상인들의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고 개선점을 내놓았다. 양동시장이 소매보다는 도매에 주력하는 상인이 많다 보니 무뚝뚝해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신세계백화점은 시장으로 서비스 전문 강사를 보내 고객 응대법을 교육하고 상인을 위한 문화강좌도 열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상품 진열과 포장 기법 등에도 조언을 했다. 양동시장에서 야채상점을 운영 중인 박정현씨는 “신세계백화점 도움으로 진열대를 새로 꾸미고,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해지려 노력하니 매출이 전보다 2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회현동의 신세계본점은 남대문시장 시계탑 리뉴얼을, 경기도 의정부점은 인근 제일시장의 태양광 홍보물 시설 설치를 각각 계획 중이다.

지역사회에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 준 기업도 있다. 대전 지역 주류 회사인 더맥키스컴퍼니(옛 선양)가 2006년 대전 지역 야산인 계족산에 14.5㎞에 달하는 황톳길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금도 매년 5억~6억원의 비용을 들여 황톳길을 관리하고 이 길을 무료로 개방 중이다. 계족산 황톳길은 의외의 효과를 낳았다. 동네 뒷산에 불과했던 계족산에 주말마다 평균 5만~6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며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덕분에 황톳길 인근은 대전에서도 손꼽히는 상권이 됐다. 계족산 인근 전통시장인 대전 법동시장의 경기도 살아났다. ‘황톳길 효과’를 톡톡히 본 이 시장은 지난해 시장경영진흥원이 선정한 ‘문화관광형시장’에 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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