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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칼럼] 외교·안보는 지혜의 게임

중앙선데이 2014.06.08 02:33 378호 30면 지면보기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미스터리다.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던 양측이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타났다.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하고, 그 시작 시점에 맞춰 일본은 북한에 대한 자체 제재를 완화해주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데이트에서 어떤 밀어들이 오갔기에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 핵 문제로 고립된 북한이나 과거사·영토 분쟁으로 한국과 중국에 포위된 일본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의기투합했다는 게 정설처럼 여겨진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 나게 한다.

북·일의 밀애를 두고 혹자는 ‘피벗 투 평양, 피벗 투 도쿄(Pivot to Pyungyang, Pivot to Tokyo)’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외교정책인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를 빗댄 표현이다. ‘북·일의 작은 외교적 반란’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북한과 일본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공조전선을 형성하게 된 데는 박근혜 정부의 대외정책이 한몫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 구상, 드레스덴 선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외쳤지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사나 독도 영유권 시비를 둘러싸고 중국과는 ‘찰떡 공조’를 하면서도 일본에는 완전히 등을 돌리다시피 해왔다.

물론 이유는 많다.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틈만 나면 핵실험이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이다, 위협해대는 북한과 어떻게 아무 전제조건 없이 타협을 한단 말인가.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북한에 어떻게 대화와 인도적 지원의 문을 순순히 열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고노(河野) 담화 검증,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일련의 반한(反韓) 공세를 어떻게 눈감아줄 수 있단 말인가.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유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대로 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일본과의 협력 관계는 우리에게 중요한 국익이다. 감정에만 얽매여 언제까지고 등을 돌려선 안 된다. 북한과 일본이 우리 입맛에 맞게 태도를 바꿔 주면 좋겠지만 당장은 기대 난망이다.

외교나 안보는 결국 ‘지혜의 게임’일 것이다.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비록 적이라도 악수쯤은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목표는 분명하다.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론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경제·안보 측면에서 우리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과의 관계는 조속히 정상화돼야 한다. 북한 비핵화와 중국 팽창기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유지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북한은 ‘피벗 투 도쿄’와 비슷한 또 다른 카드를 찾으려 할 것이다. 대책 없는 강경책만이 능사는 아니다.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뿐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 입장만 고집해선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세력 팽창에 몰두하는 중국에 한국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밀착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 있다.

때마침 북한은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며 화해 제스처를 보내왔다. 일본도 나름대로 위안부 문제 해결 등에 성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전향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는 남은 임기 내내 대북 관계에 있어서 빈손 신세를 면하지 못할 수 있다. 일본과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아시아 외교무대에서 고립돼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대화와 외교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한·중 관계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이달 말 국빈 방한으로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에겐 북한도 일본도 중국 못지않은, 아니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이웃이다. 더 이상 북한·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실기해선 안 될 것이다. 고립되면 우리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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