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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탈한’하는 일본

중앙선데이 2014.06.08 02:40 378호 31면 지면보기
“좋은 점도 많지만 싫은 면도 꽤 있습니다.”

한국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사와다 가쓰미(澤田克己) 서울지국장의 답이었다. 그는 일본 언론인 가운데서도 지한파로 꼽힌다. 그런 그가 시원스레 “네, 한국이 좋아요”라고 말할 수 없다면 대다수 일본인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일본 도쿄·오사카·교토를 돌면서 나 역시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일본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사와다 지국장과 똑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와다 지국장이 이런 생각을 ‘고백’한 것은 저서 『탈일하는 한국(脫日する韓國)』에서다. 2006년 당시 한국을 분석한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은 일본을 벗어나고 있다. 한국에 일본은 더 이상 특별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일본은 인정해야 한다”(223쪽)고 적었다.

사와다 지국장이 이 분석을 내놓은 때는 한류 붐은 정점이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긴 터널에 갇혀 있던 2006년이었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역전되고 있다. 일본은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중국과 영토 문제로 날카롭게 각을 세울 정도로 거침없어 보인다. 이와 달리 한류 붐은 예전 같지 않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정치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의 골마저 깊어지고 있는 건 적신호다. 한국일보·요미우리(讀賣)신문이 7일 발표한 공동설문에서 한국인의 83%, 일본인의 73%가 “상대방을 믿지 못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을 신뢰한다고 답한 일본인 비율은 1년 사이 32%에서 18%로 14%포인트나 떨어졌다. 이쯤 되면 ‘탈일 하는 한국’이 아니라 ‘탈한 하는 일본’이다.

왜 이럴까. 지난달 도쿄에서 막걸리를 앞에 놓고 마주 앉은 일본인 기자들은 “그렇게까지 우리가 싫다면 우리도 ‘모오이이(이제 됐어)’라고 말하는 일본인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 지도자끼리의 냉기가 일반 국민에게까지 스며들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20년 숨죽여온 일본이 이제 겨우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데 한국이 도움은커녕 재만 뿌리고 있다고 오해하는 일본인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일은 서로를 버릴 수 없다. 버려서도 안 된다. 마침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다. 무엇보다 양국 정치권부터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아시아 전문가 데이비드 필링은 일본 사회를 분석한 최근작 『Bending Adversity』에서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부재를 질타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쓸모 있을 때마다 오래된 증오를 꺼내 활용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분석했다.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이나 박근혜 정부의 ‘발끈’ 대응 모두 상대방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론 내수용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일이 서로에게 등 돌리면 과연 누구에게 이익인가. 공멸의 레이스를 끝내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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