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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러시아 대사

중앙일보 2014.06.06 00:57 종합 28면 지면보기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1917~45) ‘서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날이 며칠 안 남은 1956년, 한참 마음이 산란할 때 선배 한 분이 도미(渡美) 축하 선물이라고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사다 주셨다. 친척 언니 소개로 입학원서를 내 본 명문 웰슬리 대학에서 생활비까지 포함된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니 놓치기는 너무 아까운 기회라 서울대를 중퇴하고 생소한 곳으로 가기로 했지만 얼마나 불안하던지. 당시 우리와 미국 사이의 경제 수준이나 문화적 차이는 엄청났다. 한 해 수업료와 기숙사비가 2000달러인 학교로 가면서 내가 공식으로 환전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돈은 50 달러뿐이었다.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까 겁도 났다.



 그 혼돈의 시절에 윤동주의 ‘서시’는 내가 이런저런 잡다한 걱정을 접어두고 대신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이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서시’는 대학을 졸업할 때 진로와 관련해 아버지가 하신 말씀, “나는 네 판단력을 믿는다. 다만 한 가지, 너는 한국의 딸이라는 사실만 잊지 마라”와 함께 평생 내 삶의 길잡이가 되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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