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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개표하던 마음을 잊지 마라

중앙일보 2014.06.06 00:3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대기자
출근길 라디오조차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투표 당일 출구조사가 발표되면 윤곽이 잡힐 줄 알았다. 그런데 17개 광역단체장 중 7곳을 ‘경합’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밤늦게까지 승패를 알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경기도지사 개표는 출구조사가 뒤집혀 있었다. 어느 선거고 피를 말리지 않는 때가 없지만 이렇게 끝까지 칼날 위에서 접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한 선거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전체 판세가 흔들렸다. 경기도·인천이 새정치민주연합에, 게다가 부산까지 무소속에 넘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강원도·대전·충북이 새누리당에 넘어갔다면… 선거 판세가 극과 극을 달렸다. 그러나 결과는 절묘했다. 어느 한쪽도 승리를 외칠 수 없었다. 그것이 국민의 선택이다. 오히려 양측 모두에 경고를 날렸다. 한 표가 아쉬워 애태우던 절박함을 가슴에 새기라는 명령이다.



 투표 직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의 참패가 예상됐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너무나 컸다. 사건이 터진 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수습 과정도 어처구니없는 행태의 연속이었다. 자녀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분노한 학부모, ‘앵그리 맘’이 선거를 뒤집을 것이라는 예측이 분분했다.



 그걸 진정시키고 무승부로 막은 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이다. 박 대통령은 ‘약한 모습’을 보이기를 싫어한다. 이전에 공개된 장소에서 눈물을 흘린 일이 거의 없다. 여성 리더십의 특징이다. 부친의 리더십을 배운 흔적이고, 일찌감치 어른인 척하며 품격을 지키도록 교육을 받은 결과다. 그런 그가 세월호 희생자, 영웅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두 번씩 팽목항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을 끌어안고, 안산 분향소도 참배했다.



 가족들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바로 답변하고, 실행했다. 필요한 건 설명하고, 설득했다. 왜 이런 소통의 리더십을 진작 보이지 않았을까. 보고서가 아니라 얼굴을 보고, 손을 잡으며, 인간적인 감정을 나누는 대화 말이다. 정치적 반대세력 중에는 대통령의 눈물을 선거를 겨냥한 가식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었다. 그 눈물이 가져올 파괴력을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눈물을 또 흘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절박함만은 선거 이후에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에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이다. 국민은 ‘퇴진’이 아니라 ‘변화’를 원했다. 세월호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 진정성을 담은 소통과 개혁을 계속 끌고나가라는 명령이다.



 취임 초 한 친박 인사는 인선 관련 얘기를 하다 “그 사람은 보수이긴 하지만 친박은 아니잖아”라고 했다. 자신들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놓지 말라는 말이다. ‘난닝구-백바지’ 갈등으로 정권을 놓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능력에 따라 사람을 쓰는 게 탕평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사란 고구마 줄기 같다. 대통령이 뿌린 씨앗 하나가 고구마 줄기, 칡넝쿨이 돼 숨통을 조일 수도 있다. 대통령이 모든 인사를 직접 하지 않는다면, 능력을 재는 기계를 만들 수 없다면 당분간 기계적 탕평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측근 ‘7인회’ 멤버 중 한 명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7인회 멤버들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관·대통령수석비서관 중에 여태 독대를 못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누구랑 이야기를 하는 걸까. 보고서에서는 팽목항에서 경험한 현장의 느낌을 읽을 수 없다. 전화로는 생생한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일부 보수 인사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경질론을 걱정하는 논리에도 그 문제가 있다. 7인회 멤버인 김 실장이 아니면 오래된 대통령 측근들을 누가 누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마저 빠지면 인의 장막이 더 굳어진다는 걱정이다. 그 문제의 해법은 대통령 손에 있다.



 야당 인사들은 그런 김 실장도 못 미더워한다. 지난해 여야 영수회담 때 얘기다. 김 실장이 민주당에 통고했다. 전화를 받은 전병헌 원내대표가 “의제는 누구와 논의하면 되느냐”고 물으니 김 실장은 “나는 날짜와 장소만 말씀드리라는 지시를 받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그 뒤 민주당 측에서 이정현 정무수석 등에게 연락했지만 역시 모른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결국 사전 협의도 없이 영수회담을 했고, 회담 결과는 실패였다. 대통령은 세상 얘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 건가.



 선거 때는 온갖 약속을 다 한다. 한 표가 급하다. 그러나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지난 대선 때 복지는 제1의 화두였다. 먼저 꺼낸 사람은 박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지금 기억에서 대부분 지워졌다. 이번에 박 대통령은 눈물과 함께 공직 개혁을 약속했다. 세월호의 충격이다. 이 약속만은 지켜져야 한다. 최소한 그런 식의 소통만은 더 늘려나가야 한다.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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