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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론 - 대통령 집무실 개조해야 ① 전임자가 못한 것 … 박근혜는 해낼 수 있다

중앙일보 2014.06.05 00:47 종합 29면 지면보기
임태희
전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충격적인 부실과 불통의 실태를 드러냈다. 그런 충격 속에서 이를 계기로 국가를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른바 국가 대(大)개조론이다. 국가 개조를 위해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런 처방전이 성공하려면 역시 관건은 소통이다. 해결책을 구상하고 집행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핵심에 접근하며 가장 효율적으로 대책을 추진할 때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히는 것이다. 실상·핵심·효율을 규정하는 건 역시 소통이다. 소통은 한마디로 문제로부터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근접해 있는 것이다. 문제만 알면 어떡해서든 해결책은 찾을 수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소통의 개혁은 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실패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20여 가지 해결책을 내놓았지만 이것이 과연 문제의 핵심을 뚫은 것인지 논란이 있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총리 인선에서 안대희 파동이 생긴 걸 보면 소통능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왜 이렇게 꼬이나. 소통에 관한 한 청와대는 왜 신뢰를 주지 못하나.



 청와대의 소통 효율이 떨어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그중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청와대의 불통적 공간이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라는 게 딱딱한 보고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참모들의 표정,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가벼운 대화, 수시로 이루어지는 간결한 구두보고, 언제든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친근함 등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소통은 완결 상태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청와대의 구조로는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이 머무르는 비서실은 500m나 떨어져 있다. 참모들이 대통령을 만나는 게 협의가 아니라 접견 같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원래부터 떨어져 있던 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본관에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비서실 건물로 멀리 보내버렸다.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1년 본관을 신축하면서 지금과 같은 구조가 확정됐다.



 소통의 효율 면에서 청와대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곳이 미국 백악관이다. 백악관은 대표적인 밀집형이다. 대통령과 부통령·참모들의 사무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웨스트 윙(West Wing) 구석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보다 훨씬 작다. 집무실 양쪽으로 부통령·고문·비서실장·국가안보보좌관·대변인 등의 방들이 모여 있다. 미국이 이렇게 배치해 놓은 건 땅이나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영국의 봉건왕조와 싸워 독립을 이룩한 나라로서 민주적 소통과 리더십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구조가 이러니 회의 풍경도 청와대와 사뭇 다르다. 대통령과 참모는 대통령 집무실 소파에 모여 앉아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집무실 방문을 자주 열어놓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참모들이 자유롭게 들어오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대통령 자신도 불쑥 참모 방에 들러 책상에 엉덩이를 걸친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나 대통령이 된 사람이나 거의 모두 청와대의 분리형 구조가 문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 때 개조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고 어떤 정권은 재임 중에 개조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필자는 이명박 정권 후반기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구조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 건물을 개조하는 방안을 실무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비서실 건물 일부와 경호처 건물을 부수고 백악관처럼 밀집형 집무센터를 새로 지으며 본관은 의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일단 설계안을 만들어 보자는 안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를 확정해서 착수하는 데엔 어려움이 많았다. 정권의 동력이 약해졌고 국회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도 약했다.



 그동안 필요성을 느끼고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건 분명 역대 정권의 책임이다. 필자도 책임을 통감한다. 역대 정권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낸다면 이는 박 정권의 공적으로 남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운영의 주요 주제로 삼고 있다. 국가 대개조도 세월호 참사로 민낯을 드러낸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소통에 역행하는 청와대의 구조는 대표적인 비정상이다. 이런 비정상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다른 분야에서 정상화를 촉구하는 데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대통령이 결심하면 국민은 이에 찬성할 것이다. 그러면 국회도 기꺼이 예산을 배정할 것이다. 당장은 적잖은 돈이 들어가지만 국정 운영의 핵심부인 청와대의 소통을 개선하는 일이라면 자손 대대로 수십 배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천막당사로 옮겼던 박 대통령의 용단이라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임태희 전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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