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하준 칼럼] '집단 효도'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4.06.05 00:37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경제학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했다. 당시에 섬유, 신발 등 기술보다는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산업에서는 직원들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구내식당에서 국을 주지 않는 기업들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노동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노동시간이 길기로 1, 2위를 다툰다. 대한민국의 1년간 노동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에 멕시코(2250시간) 다음으로 긴데, 이것도 2007년까지는 1위를 하다가 최근에야 그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멕시코는 국민소득이 1만 달러 부근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이니 남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소득으로 하면 아홉째로 가난한 나라임에도 연간 노동시간은 둘째로 긴 것이다. 소득수준에 비해서 일을 너무 오래하는 것이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일을 오래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기간도 남들보다 훨씬 길다. 최근 발간된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60세에 은퇴한 뒤 10.5년을 더 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소득이 우리의 반도 안 되는 칠레(7.4년), 멕시코(5.5년), 터키(4.2년) 등의 국민들보다도 3~6년을 더 일해야 진정한 은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공식적인 은퇴 나이 이후에 일을 하는 경우에도 그 일자리의 질이 형편없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퇴할 나이에 이른 사람이 이전보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예전보다는 적지만 적당한 봉급을 받으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은퇴할 나이가 넘어서도 일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은퇴 후에 일을 하는 것은 생계를 잇기 위해 할 수 없이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약 60%가 50대 이상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영세 자영업은 도산 위험도 크기 때문에 그것을 운영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더 심한 경우가 많다. 몸만 고된 것이 아니라 마음도 고된 것이다.



 다른 나라들 같으면 은퇴하고 쉴 나이에 일을 해서 몸과 마음은 고달프지만 그 덕에 수입이라도 넉넉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연금 및 기타 노인을 위한 복지지출이 형편없기 때문에 일을 해서 조금 돈을 벌어도 전체적인 생활수준은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5%로 OECD 국가 평균보다 3.4배나 높다. 다른 나라보다 일은 일대로 더 하는데도 생활은 더 어렵다는 것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장시간 노동과 높은 빈곤율에 시달리다 보니 노인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초기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살률이 OECD의 평균 이하인 ‘자살 잘 안 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고용이 불안해지고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자살률이 급증하여 자살률이 OECD 평균의 3배가량 되는 ‘자살 공화국’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노인 자살은 독보적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2010년 기준 10만 명 사망당 20.9명인 OECD 평균의 4배 가까이 되는 80.3명이다. ‘노인 주도형 자살공화국’인 것이다.



 지금 쉬지 못하고 일하면서 빈곤에 시달리다가 결국 못 견디고 줄줄이 자살하는 노인들이 누구인가? 60년대, 70년대에 십장에게 뺨 맞아가면서 ‘기름밥’ 먹고 하루에 12시간, 15시간씩 공장에서 일하던 ‘산업 전사’들, 가족은 버려두고 회사에 몸 바쳐 세계적인 기업들을 키우는 데 공헌한 사무직 직원들, 그리고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마치 정원사가 정원 가꾸듯이 지성으로 가꾸어 쌀을 생산해서 국민들을 먹여 살린 농민들, 바로 그들이 지금의 노인들 아닌가? 그들이 없었으면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방기하다 못해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예전 같으면 효도하지 않는 자식들 몇 명만 꾸짖어 바로잡으면 노인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대가족 제도는 붕괴되었고, 가족들이 전국에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으며, 젊은이들도 생활이 어려워 출산율이 세계 최저로 떨어진 상황이다. 노인연금과 노인을 위한 복지지출을 대폭 늘려서 국민 전체가 윗세대에게 ‘집단 효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경제학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