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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안 주고 월세 가로채고 법적 수단 동원해 적극 대응을

중앙일보 2014.06.05 00:01 3면
문이 잠긴 한 부동산중개업소. 이 중개업소 직원에게 속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세입자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채원상 기자


건물주로부터 위임받아 오피스텔, 다가구주택 등을 임대·관리하는 일부 부동산중개업소의 횡포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 이들 부동산중개업소는 계약기간 만료 후 이사하려는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와 대응 방법을 알아봤다.

[우리 동네 이 문제] 건물 위탁 관리 부동산중개업소
"임대인 동의 없이도
우선적으로 보증금 반환
이자까지 받을 수 있는
'임 차권 등기명령' 제도"



천안시 성정동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이미영(가명·43)씨. 이씨는 지난해 4월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1년 계약 조건으로 보증금 3000만원에 월 8만원을 내는 조건의 반월세 계약서를 작성하고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끝난 지 두 달째가 된 지금까지도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계약이 만료되면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려고 집을 알아보고 구두로 계약까지 했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이씨는 보증금을 받기 위해 건물주에게 수 차례 전화를 건 끝에 겨우 연결됐다. 그러나 건물주는 오피스텔 임대·관리를 위임받은 부동산중개업소와 연락하라는 말만 하고 끊었다.



이씨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보증금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에 부동산중개업소는 어려운 사정을 봐달라며 보증금 3000만원 중 고작 400만원만 줬다. 이씨는 “계약기간이 끝나기 한 달 전부터 집을 비우겠다고 부동산중개업소에 알렸다”며 “보증금을 받지 못해 이사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처음에는 다 돌려줄 것처럼 얘기하더니 계속 독촉을 받고서야 200만원씩 두 차례 준 게 전부”라며 “그 뒤부터는 건물주에게 잘 얘기해 보겠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오피스텔이 텅텅 비어 있는 것도 아닌데 보증금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며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을 보기도 어렵고 가까스로 만나더라도 기다리라는 말만 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행태를 보면 앞으로 어떻게 믿고 무작정 기다릴 수 있겠느냐”고 분개했다.



 이상희(가명·38)씨 역시 건물 임대·관리를 위탁받은 부동산중개업소와 계약했다가 낭패를 봤다. 지난해 3월 직장과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은 이씨는 전세를 원했지만 반전세를 권하는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의 말을 듣고 계약서를 썼다. 그 직원은 전세 5500만원을 보증금 4700만원에 월세 8만원으로 바꾸면 1년 뒤 이사할 때 건물주가 1년치 월세 96만원을 되돌려주기 때문에 이씨에게 유리하다고 했다. 이 말을 믿고 이씨는 당장 계약한 것이다.



하지만 1년 뒤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그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을 만나려고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건물주와 만난 이씨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1년간 건물주에게 준 월세를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이 가로챈 것이다. 결국 이씨는 1년치 월세를 건물주에게 더 줘야 했다.



최근 천안에서는 위 두 사례처럼 건물 임대·관리를 위임받은 부동산중개업소에게 피해를 당한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계약서에 없는 조건을 내세우며 월세를 가로채거나 계약기간이 끝나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물주와 직접 계약하지 않고 건물 임대·관리를 위임받은 부동산중개업소와 계약할 경우 대리인과의 계약이기 때문에 건물주에 대한 월세금 입금 여부나 보증금 반환 지연 같은 문제가 생기면 임차인은 임대인 대신 부동산중개업소 직원과 협의해야 하므로 해결이 쉽지 않다.



 A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건물주 사정으로 보증금을 제때 주지 못하는 경우가 천안 곳곳에 비일비재한데 굳이 건물을 위탁 관리하는 부동산중개업소만의 문제로 보는 건 잘못됐다”며 “많은 건물을 관리하다 보니 임차인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이런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계약기간이 만료된 경우 보증금을 우선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있는 만큼 건물주나 위탁 부동산중개업소와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다면 ‘임차권 등기명령’이나 약식 소송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영행 부동산학 박사는 “임대인 동의 없이도 보증금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는 데다 보증금에 대한 이자까지 지급받을 수 있는 임차권 등기명령을 알아두면 유익하다”며 “또 계약기간과 조건이 확실하다면 소송 비용을 임대인이 부담할 수 있는 판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협의가 잘 되지 않으면 이런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강태우 기자·이은희 인턴기자



◆ 임차권 등기명령=임차인이 임대차 기간 만료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하면 임대차 계약으로 취득했던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이 상실된다. 이 때문에 보증금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임차권 등기명령이다. 임차권 등기 신청을 하면 임차인은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다. 보증금을 받지 못한 임차인만이 신청할 수 있다. 관할 법원에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필요한 서류는 임대인 소유로 등기된 주택 또는 건물에 대한 등기부등본, 임대차 계약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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