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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청년 실업과 알뜰주유소

중앙일보 2014.06.03 00:55 경제 11면 지면보기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지금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경제사회 문제, 예컨대 내수 부진, 부동산 경기 침체, 소득격차의 확대와 사회적 불만, 이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보장 지출의 증가, 저출산, 국가 재정수입의 부족 등은 따지고 보면 청년 실업이 그 뿌리에 있다. 즉 젊은이들이 취직이 안 되니 세금도 못 내고, 결혼을 미루고, 집도 안 사고, 아기도 못 낳으니 내수가 침체될 수밖에 없고, 소득격차 지표도 악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2001년부터 정부 경제정책의 초점을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한 내수 진작과 고용 창출’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그러나 실제 각론에 들어가면 정부 각 부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정책목표가 있을 수밖에 없어서 내수진작과 고용창출에 역행하는 일들이 왕왕 일어나곤 한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등이나 세계 금융위기 같은 상황의 변화가 다른 목표를 우선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지금도 여론조사를 하면 거의 언제나 물가안정이 국민이 원하는 최상위 정책과제로 나타나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업이 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가장과 취직이 안 된 젊은이들의 고통과 좌절, 또 여기서 파생되는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생각하면 이런 여론조사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굳이 하려면 실업자의 의견에는 10배의 가중치를 주든지, ‘고용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 물가는 이미 1.5% 수준까지 안정되어 있어 디플레를 걱정하는 지경에 있다’라고 하는 판단에 필요한 관련 정보를 주고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 정보도 지식도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여론조사는 비용만 낭비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만 왜곡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주유원이 없는 주유소’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알뜰주유소를 들 수 있다.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연간 몇십만원 혜택을 주려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그렇게 우선순위가 높은 정책과제였을까? 한편으로는 일자리 나누기를 해서라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종용하면서, 조금 여유 있는 사람들이 그 소득의 일부를 나누어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주유원을 없애는 일을 정부가 나서서 독려까지 해야 할 일이었을까?



 대형 소매점에 대한 영업일수·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규제도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을 제대로 평가했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몇 달 전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대응책으로 전화마케팅을 금지시켰다가 며칠 만에 다시 푼 것은 고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성급한 판단을 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앞으로라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게 하려면 먼저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고용에 미치는 어떤 정책의 영향을 사전·사후에 평가하는 고용영향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나 교통영향평가를 의무화한 나라에서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왜 평가하지 않는가? 정부의 각 부처가 자기 소관의 다른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용을 희생하는 일을 막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또 정부 부처별 고용통계를 편제하여 분기별 한 번씩 대통령이 주재하는 고용진흥 민관확대회의를 열어 발표하고 평가받게 하자. 재벌그룹이나 기업들의 고용실적도 정기적으로 발표를 해서 기업의 사회에 대한 가장 큰 공헌이 고용이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공항에서의 VIP 의전도 세금을 많이 내고 고용을 많이 한 기업에 제공돼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의한 규제 대상을 정하기 위해서 만든 자산 규모에 의한 순위를 왜 예우를 할 때에도 쓰는지 알 수가 없다. ‘백억 불 수출탑’ 같은 훈장을 아직도 주면서 ‘일천 명 고용탑’과 같은 훈장은 주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정부는 “규제개혁이라고 쓰고 고용창출이라고 읽는다”라고 하면서 규제개혁에 온 힘을 쏟고 있는데, 통계상 규제개혁 실적이 올라가도 투자와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실적 평가를 최종목표인 고용창출을 가지고 할 때에만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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