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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소방방재청 개편, 일선 목소리부터 들어라

중앙일보 2014.06.03 00:42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기자]


고석승
사회부문 기자
“소방방재청은 최초로 국민들의 서명운동까지 해가면서 만든 국가 조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없애다니요.”



 경기도에서 소방관으로 근무 중인 김모(43)씨는 1일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날은 소방방재청 설립 10주년이었다. 그는 지난 며칠간 SNS를 통해 소방방재청 해체를 막아달라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려왔다.



 정부는 최근 해양경찰청을 폐지하고 장관급 조직인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입법예고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재난을 예방·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해경과 함께 소방방재청까지 해체키로 하면서 일선 소방관들이 부글거리고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의 업무는 소방본부로 옮겨가게 된다. 기관장의 지위도 소방방재청장(차관급 소방총감)에서 소방본부장(1급 소방정감)으로 한 단계 낮아지게 됐다.



 일선 소방관들의 불만은 단순히 기관의 급이 격하된다는 문제가 아니다. 소방 인프라나 일선 소방관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데 왜 우리가 세월호 사고의 후폭풍을 맞아야 되느냐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그동안 소방방재청은 독립 소방청 신설과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요구해 왔다. 경찰과 달리 소방관은 전체 3만9519명 중 99%가 지방직 공무원이다. 각 시·도 소방본부가 광역자치단체 소속으로 돼 있어 일선 소방관들은 소방방재청과 광역지자체의 지휘를 모두 받는다. 또 시·도별 재정 여건에 따라 소방 서비스의 격차가 심해 전 국민이 고른 소방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중앙일보 5월 28일자 14면



 이번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일선 소방관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그나마 장갑은 얼마 안 하니까 개인적으로 살 수나 있죠. 방화복은 한 벌에 60만원이 넘어요. 헤어지고 떨어져도 새로 보급이 안 나오기 때문에 계속 입는 겁니다. ”



 전남도에서 7년째 근무 중인 소방관 박모(36)씨는 “소방 분야는 언제나 무시당하는 조직”이라고 푸념했다.



 소방관들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버티는 사람들이다. 한 명이라도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불길과 유독가스 속으로 뛰어든다. 실제 구조·진화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는 소방관도 많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소방방재청을 포함한 국가방재시스템 전반을 개혁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이 빠진 재난관리 정책은 제대로 될 수 없다. 만약 이번 조직개편을 책상 앞에 앉아 결재만 하던 관료들이 주도했다면 개혁 대상이 개혁을 한다고 나선 꼴이다. 함선 한 번 타본 경험 없는 사람들이 간부 조직을 독차지하다 해체된 해경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고석승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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