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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의 아리랑, 한·일간 틈 좁히다

중앙일보 2014.06.03 00:37 종합 21면 지면보기
NHK 심포니는 손열음과 호흡을 맞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제3번으로 두 나라의 화합을 기원했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로자 페올라
축구는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데 음악은 어떨까. 음악이 분쟁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까. 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모인 한국과 일본 청중은 오랜 불화로 껄끄러운 한·일 관계를 잠시나마 잊었다. 2시간 30분여 음악이란 울타리 안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슬픔과 기쁨에 하나가 됐다. 8년 만에 내한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지난 몇 년 새 두 나라 사이에 불거진 해묵은 앙금을 짧지만 굵은 평화의 선율로 순간 날려 버렸다.

8년 만에 서울서 공연
손열음 황홀한 협연에 이어
앙코르 밀양 아리랑 연주에
두 나라 청중 함께 어깨 장단



 이날 오후 7시 무렵부터 음악회장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한·일 음악 애호가들은 음악의 여신의 날개 아래 국경과 국적을 망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4월과 5월을 신음하며 보낸 이웃을 위로하려 NHK 심포니는 음악회 서두에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그 정중한 추모곡이 끝나자 단원들은 객석과 하나돼 깊은 묵념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둔 두 나라는 꽤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전혀 편한 이웃으로 지내지 못했다. 문화라도 좀 나서서 화해 분위기 조성에 일조해달라는 게 이번 음악회를 주최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중앙일보와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속마음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서면으로 보낸 축사에서 “음악을 통한 일본과 한국의 교류가 앞으로 더욱 발전해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해 손님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음악 대사를 자임한 NHK 심포니의 협연은 격렬하면서도 황홀했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제3번은 손열음의 에너지 넘치는 타건과 NHK 심포니의 숙련된 조응으로 불꽃이 튀었다. 히로카미 주니치의 역동적이면서도 곰살궂은 지휘가 어우러져 흥겨운 한·일 음악인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그치지 않는 박수 세례에 손열음은 호흡을 가다듬고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앙코르곡으로 바흐의 사냥칸타타 중 ‘양떼는 평화롭게 풀을 뜯고’를 선사했다. 절제된 감정으로 건반을 냉정하게 조율한 손열음의 연주는 위로에 목말랐던 청중에게 흐느끼지 않으면서 비애를 드러낸 특이한 순간을 경험하게 했다.



 NHK 심포니는 이미 1930년에 세계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제4번을 녹음한 관록의 교향악단이다. 후반부 연주곡목인 이 말러 4번에서 히로카미 주니치는 느긋한 열정으로 춤추듯 즐기면서 말러를 요리했다. 4악장에 등장한 소프라노 로자 페올라는 그 가사에 담긴 뜻을 달콤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지상에는 이 천상의 음악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쏟아지는 앙코르 요청에 지휘대에서 내려와 인사하던 히로카미는 잠시 휘청했다. 오른쪽 구두 밑창이 떨어진 것이다. 청중을 웃게 한 해프닝에도 아랑곳없이 히로카미는 김희조 편곡의 ‘밀양 아리랑’으로 초여름 밤 두 나라 국민의 흥을 돋웠다. 우애에 갈급했던 청중은 어깨를 들썩이며 장단을 맞췄다. 음악은 한숨보다 유약하지만 때로 강철보다 강하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300여 명 일본 음악애호가들이 단체유람을 온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붕 아래서 음악은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부숴버렸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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