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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소마에서 본 세월호 참사

중앙일보 2014.06.03 00:34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그는 애써 울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낯선 외국 기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세 아이의 엄마인 투바 토크막(24)은 지난달 13일 터키 서부 마니사주(州) 소마에서 일어난 탄광 참사로 남편을 잃었다. 히잡(무슬림 여성용 스카프)으로 머리는 감췄지만 슬픔과 분노에 찬 표정까지 감추진 못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 낮 근무조-소마 탄광은 하루 3교대로 24시간 풀가동했다-였던 남편은 평소대로 오전 6시반 집을 나섰다. 탄광은 소마 시내에서 30㎞ 떨어져 있다. 저녁에 있을 큰딸의 유치원 행사에 늦지 않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지만 남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1년에 사흘뿐인 유급휴가를 함부로 쓰기 아까웠을 것이다. 투바는 끝까지 말리지 않은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고는 저녁 근무조와의 교대시간 직전인 오후 3시15분에 일어났다. 남편은 사고 다음 날 일산화탄소에 질식된 주검이 되어 귀가했다.



 “평소에 정부가 안전점검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사고가 났겠어요?” 투바는 “더 이상 똑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책임자 처벌과 합당한 보상은 그다음 문제라고 했다.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갈 데까지 가겠다는 결의도 내비쳤다. 다른 유가족들과 서로 연락하며 한목소리를 내기로 했다는 말도 했다.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소마에서 만난 탄광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탄광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서류상으로는 대피소가 여러 군데 있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론 한 곳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통풍시설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어 그리로 피신했던 14명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그들 말에 따르면 노동감독관들의 안전점검과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교육은 형식적이었다. 안전점검은 대개 현장보다 사무실에서 이루어졌고, 대피로를 아는 광원들은 거의 없었다. 낡은 산소마스크는 필요한 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불연성 고무 재질로 돼 있어야 할 작업용 부츠는 불에 잘 타는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요컨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회사가 안전에 대한 투자는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유가족과 탄광 노동자들은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참사가 잊힐까 두렵다고 했다.



 약 한 달의 시차를 두고 한국과 터키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한국에선 세월호 침몰로 고등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터키에선 소마 탄광 폭발 및 화재로 301명의 광원이 숨졌다. 비슷한 건 희생자 숫자만이 아니다. 안전규정을 제대로 안 지켜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人災)란 점도 정확하게 닮았다. 한국전쟁 때 피를 나눈 ‘형제국가’ 한국과 터키가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성격의 재난을 당한 꼴이다. 하지만 충격의 감도는 두 나라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유가족들의 걱정대로 소마 참사는 터키에서 빠르게 잊히고 있다. 현지 신문의 헤드라인은 이슬람 알레비 종파 추종자들에 대한 경찰의 총격 살인 사건과 탁심광장 시위 사태 1주년, 그리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대권 행보로 이미 옮겨갔다. 에르도안 총리는 탄광 사고 열흘 만에 독일로 날아가 현지 터키 유권자들을 상대로 사실상의 선거유세를 벌였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투다.



 터키 최대 일간지 자만에는 한국과 터키 정부의 대응을 비교하는 칼럼이 실렸다. 압둘하미트 빌리지 지한통신 사장은 ‘소마 참사가 한국에서 일어났다면’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에선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국민 앞에 눈물로 사죄하며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한 점을 주목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탄광 사고는 늘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말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리에게 야유를 하면 맞는다”고 속삭이며 실제로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그의 보좌관은 시위대에 발길질을 했다. ‘21세기의 술탄’ ‘터키의 푸틴’을 꿈꾸는 듯한 그의 언행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지난달 국제노조총연맹(ITUC)이 발표한 세계노동권리지수(GRI)에서 한국과 터키 둘 다 최하위권에 속하는 5등급을 받았다.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는 나라란 의미다. 중국·인도·방글라데시·짐바브웨 등과 동급이다.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고,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무시하는 한 세월호나 소마 탄광 참사는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인재 앞에 속수무책인 3류 정부를 갖는다면 경제발전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희생자들 앞에서 두 나라가 답해야 할 엄중한 질문이다. <소마(터키)에서>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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