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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승규·범영아, 공이 안 오게 해야 진짜 '거미손'

중앙일보 2014.06.03 00:18 종합 24면 지면보기
2일 축구대표팀 전지훈련지 마이애미에서는 특별한 골키퍼 훈련이 있었다.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찬 축구공은 핸드볼 공보다 더 작았다.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에 대처하기 위한 둘레 50㎝의 스킬볼이었다.


월드컵 D-10, 이운재의 조언
목 쉬도록 수비 위치 잡아줘라
선후배 없다, 자신이 급한데

 변화가 심했던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와 달리 브라주카는 속도와 정확성이 향상됐다. 역대 공인구 중 가장 적은 6개 패널로 제작돼 공기의 저항을 적게 받는다. 자블라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등 무회전 키커에게 유리하고, 브라주카는 안드레아 피를로(이탈리아) 등 정확한 키커에게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를 막아야 하는 골키퍼들의 집중력과 순발력을 높이기 위해 ‘꼬마 공’으로 훈련한 것이다. 골키퍼 이범영(부산)은 “스킬볼은 스피드가 빠르고 잡기 힘들다. 작은 공을 잡다 큰 공을 잡으면 더 커 보이니 반응이 빨라진다”고 말했다.



 나도 현역 시절 비슷한 훈련을 했었다. 1995년 올림픽대표 시절 러시아 골키퍼 코치가 테니스 라켓으로 서브 넣은 테니스 공을 막았다. 테니스 선수 앤디 로딕(미국)의 서브는 시속 250㎞에 육박한다. 엄청나게 빠른 테니스 공을 반복해 쳐내다 보니 야구로 따지면 선구안과 동체시력이 좋아졌다. 단 공이 작으니 무의식적으로 한 손으로 걷어내는 습관이 생기더라. 안정적으로 두 손으로 막는 기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난 네 차례 월드컵에 참가해 네 개의 공인구를 경험했다. 공인구 적응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핑계다. 어떤 팀의 골키퍼든 공인구 발표부터 동등한 출발점에서 시작하고, 적응은 각자 노력에 달려 있다. 난 공인구에 익숙해지기 위해 공을 안고 잤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공인구 팀 가이스트 적응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으로 안 되면 몸으로 막겠다”고 말했었다. 어떤 공이든 팔과 어깨에 힘을 빼고, 스펀지가 흡수하듯 부드럽게 막아야 한다.



 지난달 28일 골키퍼 정성룡(수원)이 풀타임을 소화한 튀니지와의 평가전(0-1 패)을 지켜봤다. 성룡이가 김봉수 코치님과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한 것 같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집중력이 매우 좋아진 것 같다.



 단 실점 장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골키퍼가 과감히 나오면 상대의 슈팅 각도는 줄어든다. 성룡이가 낮은 공에 유난히 약하다고 지적한 기사를 봤다. 실제로 홍명보호 합류 후 실점한 12골 중 10골이 허리 아래에 집중됐다. 골키퍼가 가장 막기 힘든 슛이 땅볼슛인데, 각을 좁히는 게 관건이다.



 대표팀 골키퍼 정성룡과 김승규(울산), 이범영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첫째, ‘에이스를 연구하라’. 난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을 앞두고 티에리 앙리의 플레이를 반복해 봤다. 앙리는 오른발 인사이드 감아차기가 장기였다. 후반 40분 앙리의 인사이드슛을 왼손을 뻗어 막아냈다. 후배들도 H조 에이스 알렉스드로 코코린(러시아), 소피앙 페굴리(알제리), 에당 아자르(벨기에)의 슈팅 습관을 미리 인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골키퍼는 수퍼세이브만 하는 골키퍼가 아니다’. 수비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서 골대로 공이 안 오게 하는 골키퍼가 최고다. 골키퍼는 적극적으로 소리 지르고 수비수 위치 조정을 해줘야 한다. 난 경기가 끝나면 늘 목이 쉬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홍명보 형에게도 소리를 질렀다. 운동장 안에서 형이 어딨나. 내가 살아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너희는 경쟁자가 아닌 동료다’. 난 1994년 미국 월드컵 독일전 후반 교체투입돼 45분을 정신없이 뛰었다. 2002년과 2006년에는 주전이었지만, 2010년에는 정성룡에게 주전을 내줬다.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패한 뒤 눈물 흘리는 성룡이를 끌어안고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조언해줬다.



 성룡이는 ‘난 1인자’라고 자만하지 말고, 승규와 범영이는 ‘난 못 뛸 거다’라고 포기하지 마라. 단 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는 월드컵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골키퍼가 허다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하는 골키퍼 3명이란 자긍심을 갖고 서로 격려하길 바란다.



이운재 본지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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