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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풍성 비빔밥에 칼칼한 선지 해장국 음식궁합 오묘하네

중앙선데이 2014.05.31 02:06 377호 22면 지면보기
1 오래된 뽕나무에서 따온 오디를 팔고 계시던 할머니
큰일을 하나 치렀다. 서울에 올라가 아기의 돌잔치를 무사히 마친 것이다. 2박3일 일정에 일가친척을 위한 자리와 친구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하다 보니 이래저래 힘이 들고 신경 쓸 일도 적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기적(!)을 경험한 나날이었기에 보람도 컸다. 다만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가 문제였다. 어딘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완충작용을 해줄 무언가를 찾아 아내를 출근시켜 주는 길에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17> 맛있는 진주중앙유등시장

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진주중앙시장, 정식 명칭은 진주중앙유등시장. 유등축제가 워낙 진주의 명물로 자리 잡다 보니 아예 ‘유등’을 시장 이름에 끼워 넣었나 싶었다. 하지만 의구심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진주중앙유등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기에.

비단의 고장 진주서 맛보는 오디
지금이야 ‘부산을 제외한 경남 최대 규모 도시’라는 타이틀을 창원에 내주었지만, 진주는 꽤 오랫동안 경남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역사적 장소도 적지 않은데, 첫손에 꼽히는 것이 임진왜란 당시의 의기(義妓) 논개를 떠올리게 되는 촉석루다. 진주성의 부속 건물이기도 한 촉석루는 지금도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며 당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인데, 유등축제가 벌어질 때는 방문을 포기하는 편이 더 나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유등축제가 벌어지는 기간에는 진주개천예술제도 펼쳐진다. 1949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우리나라의 지방문화 예술행사의 효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유래가 깊다. 국악과 시조, 무용, 문학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대한 경연과 공연, 전시가 펼쳐지는 터라 볼거리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그 수준 또한 높다고 한다. 심사를 맡거나 공연에 나서는 이들 대부분이 무형문화재이거나 그 수제자들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아버지께서 내게 일러주신 정보는 또 다른 것이었다. “1960~70년대에 농업과 관련된 많은 시험운영, 시범 재배들이 두 곳에서 시행됐는데 한 곳이 수원이고 다른 한 곳이 진주였다”는 말씀이었다. 그만큼 기후가 좋고 다양한 작물 재배가 가능한 데다 오랫동안 중심지 역할을 했기에 효과를 퍼뜨리기에 좋았다는 뜻이었다.

이런 다양한 배경이 있는 진주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러니까 조선시대부터 가장 큰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온 진주중앙유등시장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일 터다.

2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여전히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진주의 한복들 3 비빔밥에 곁들여진 선짓국이 특히 일품이다 4 팥물이 달지만 계피향이 섞여 있어 물리지 않고 산뜻하다
그런데 시장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인 것들은 한복집이었다. 어라? 물론 재래시장에 한복집이 있는 게 어색한 풍경은 아니지만, 이곳의 한복집들은 그 수와 규모가 평범하질 않았다. 아하! 그제야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인근을 지날 때마다 보이던 커다란 입간판이 떠올랐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질 않지만 어쨌든 비단, 그러니까 실크에 관한 것이었다. 얼른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자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진주 비단은 그 역사가 무려 삼한시대까지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어이쿠야. 나는 그제야 다시 한복집들을 기웃거렸지만, 내 안목이 높질 못해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노점에서 한 할머니가 팔고 계시던 오디를 보자 진주의 비단을 새삼스레 생각하게 됐다. 할머니는 귀가 많이 어두우신지 내가 제법 크게 묻는 말에도 금세 반응을 보이시지 않을 정도였는데, 다만 오디는 댁 주변 뽕나무에서 직접 따왔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뽕나무가 아주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은 할머니 주위의 아주머니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오디를 좀 사겠다고 하자 느릿한 손길로 비닐봉투를 꺼내고 검푸른 오디를 담아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진주 사람들이 뽕잎을 따서 누에를 먹이고 고치에서 비단을 만들어냈을지 문득 아득해졌다.

달콤한 팥물에 찍어 먹는 색다른 찐빵
비단만큼은 아니지만 시장에는 진주의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음식점도 몇 곳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진주비빔밥을 내놓는 천황식당이다.

잠시 비빔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주 사람들의 비빔밥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하다. 제대로 된 비빔밥은 진주 것이지 전주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한다. 먹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바로 드라마 촬영을 해도 될 만큼 고풍스러운 내부의 음식점에서 내오는 비빔밥은 전주의 그것에 비해 소박한 느낌이었다. 인테리어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밥 위에 올려놓은 고명들 역시 들기름 등으로 윤을 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맛 또한 그랬다. 도드라지는 느낌 없이 소박하면서 풍성했다.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사용하는 진주비빔밥의 특징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압권은 곁들여진 선짓국이었다. 선지보다 많이 들어간 살코기와 내장, 그리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맑고 깊은, 그러면서도 적당하게 살아 있는 칼칼함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여운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근처 수복빵집에서 후식을 먹기로 했다. 일반적인 것의 절반 정도 크기의 찐빵을 팥물에 찍어 먹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곳 역시 아주 오래된 가게임을 금세 짐작할 수 있는 내부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맛 역시 그랬다. 팥물의 당도가 상당했음에도 들척지근하거나 뒷맛이 나쁘지 않았다. 외려 ‘오래된 단맛’이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여름에는 팥빙수, 겨울에는 팥죽도 함께할 수 있다 하니 계절에 따라 찾는 재미가 더할 곳이기도 했다.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경남의 모든 것이 모이는 시장이라는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상상했던 것만큼의 규모는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남대문시장만큼의 외형을 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팔고 있던 아주머니들의 마음만큼은 기대 이상이었다.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도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라면, 내가 “서울에서 살다 지금은 통영에 내려가 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통영? 거보다는 진주가 살기 좋을 낀데. 여가 인심도 좋고 비나 자연재해 같은 것도 없고, 어디든 쉽게 가고. 통영 말고 진주는 안 살 낀가?”

바다가 없어 좀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던 진주.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는 동안, 나는 이 오래된 도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역사가 있고 그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장이 있고 그 시장을 즐겁게 만드는 좋은 사람들이 있는 도시에 대해 말이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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