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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스타일 외교 첫선 … 한·중 양쪽에 견제 메시지”

중앙선데이 2014.05.31 23:36 377호 3면 지면보기
북한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일본인 납치피해자를 전면 재조사하기로 했다. 일본은 북한의 조사 시점에 맞춰 대북 독자 제재를 8년 만에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북한에 납치됐다가 2002년 10월 15일 일본으로 돌아온 오쿠도 유키코(왼쪽)와 하스이케 가오루. 이들은 다른 피랍 생존자 3명과 함께 귀국했다. [로이터=뉴시스]
북한과 일본이 지난달 29일 ‘빅딜’을 이뤄냈다. 북한이 일본인 납북자 실태를 전면 재조사하는 대가로 일본은 8년 만에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이뤄진 북·일 합의는 동북아 정세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1일 국방대 박영준(안보대학원) 교수와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를 만나 이번 북·일 합의의 의미를 짚어봤다.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대북제재 완화’ 빅딜에 담긴 의미

김용현 동국대 교수(왼쪽)와 박영준 국방대 교수. 최정동 기자
-북·일 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나.
▶박영준 교수(이하 박)=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그동안 차근차근 북한과의 합의를 준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5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를 북한에 보내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채널을 다시 열었고, 올 3월엔 북·일 국장급 회담을 1년4개월 만에 재개했다. 일본은 북한을 상대로 구체적인 외교 성과를 올리기 위해 진력했다고 볼 수 있다.
▶김용현 교수(이하 김)=북한은 일본보다는 덜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도 지난해부터는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가면서 북·중 일변도의 기존 외교관계에 변화를 주려고 했다. 6월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도 북한이 합의를 서두른 계기가 됐다고 본다.

-북·일의 속셈은 무엇인가.
▶박=과거사·영토분쟁 등의 문제로 일본은 한국·중국과 대립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견제를 위해 북한의 손을 잡은 측면이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국내적으로도 핵심 공약이었던 납치문제를 북한과 외교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김=새로 들어선 김정은 정권의 가장 큰 과제는 체제가 안정적으로 순항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부정적인 측면이긴 하지만 제3차 핵실험을 한 것이라고 본다. 긍정적인 측면도 찾아야 했는데 핵문제에 있어서는 진전이 없었고 북·중 관계에서도 진전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으로서는 김정은표 외교적 성과가 필요했다. 물론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김정은의 중국 방문이었다. 외교적 성과는 대내외적으로 필요했다. 그것이 일본과의 합의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합의 가능성이 있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베 정부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북·중 일변도 외교에 변화
-이번엔 납치피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나.
▶박=북한이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어떤 결론을 내서 일본에 통보할지, 일본 여론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가장 큰 변수다.
▶김=핵문제와 관련해 진전이 있다면 북·일 합의가 빠른 속도로 이행될 수 있다. 결국 납치자 문제 자체도 정치적인 문제다.
▶박=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다. 합의 문서가 사문화될 가능성도 있다. 2002년 평양선언처럼 상징적 문서로 남을 수도 있다.

-이번 합의가 북·일 국교정상화로 가는 실질적 첫걸음이 될 수 있나.
▶김=국교정상화 문제도 마찬가지로 핵문제 해결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북핵 문제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고 해도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흐름일 때야 비로소 양측은 국교정상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거다.
▶박=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나섰다면 이번 합의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억제시킨다든지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유의해볼 만한 대목이다.
▶김=김정은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과거와는 달리 정당한 외교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김정은표 외교의 첫 신호가 아닐까.

-이를 계기로 북한이 6자회담으로 나설 가능성은.
▶박=재개가 바람직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수순이 필요하다. 북·일 관계와 달리 남북이나 북·미 사이에는 달라진 게 없다. 일본의 제재 해제 내용도 매우 제한적이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제재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작은 양보를 한 셈이다. 오히려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6자회담에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김=이번 합의가 미국과의 사전조율에서 나왔느냐가 문제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6자회담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6자회담과는 무관할 것이다. 무관하다면 이번 북·일 합의가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으로서는 북·일 간의 외교 공간이 열려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북한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일 것이다. 공을 던져놓았으니 기다려보자는 태도로 나올 것이다.

-기존의 한·미·일 vs 북·중 구도가 한·중 vs 북·일 구도로 바뀔 수 있나.
▶김=북·일 간의 합의는 매우 부분적인 것이다. 국교정상화로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근본 구도의 변화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은 한·중 접근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일본은 북·일 합의를 통해 한국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일 관계도 중시해 달라 이런 메시지를. 북한도 전통적 맹방이었던 중국이 오히려 한국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자 당황해 왔다. 그동안 특수했던 북·중 관계도 보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여왔다. 시진핑 주석 방한을 앞두고 북한으로서는 일본과의 부분적 합의 통해 중국에도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닐까.
▶박=한·미·일 vs 북·중의 기존 구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만 판이 약간씩 움직이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북·일이 납치문제 해결 합의를 통해 일시적으로 가까워지고 한·중이 시 주석 방한을 계기로 더 가까워 보이는 현상이다. 구도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 시진핑의 서울 방문은 한편으론 북한을 압박하는 부분도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북·일 교섭을 통해 우리가 중국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다, 일본도 있고 러시아도 있고 다른 카드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선 남한에 대해서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남쪽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 의사가 없으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일본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김=‘북한판 남방정책’이랄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이 중국과 소련에 접근했을 때의 북방정책처럼.

북한판 남방정책 평가도
-일본의 제재 해제로 북한 핵 압박수단이 약해질 텐데.
▶박=북·중 경제 교류에 비해 북·일 교류 규모는 작은 걸로 알고 있다. 설령 일본이 대북 인적 교류를 재개하고, 송금 제한을 해제하더라도 북한 경제를 극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제재 해제가 상징적 의미는 있지만 북한 경제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김=2002년 일본의 대북제재 전 북한과의 교역액은 중국보다 많았다. 지금은 거의 제로 수준이다. 제재가 해제된다면 어쨌든 북한 경제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은 틀림없다. 올해 북한 경제의 상황은 아주 나쁘진 않다.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지난해나 지지난해에 큰 수해도 없었고 한해도 없었다. 김정은으로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나.
▶김=그동안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치고나가기는 했지만 기본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국제 간의 공조에 있어서 갈등적 요소는 있지만 큰 틀 자체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이대로 계속 가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산가족 상봉 이런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이슈화할 수밖에 없다.
▶박=우리 정부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드레스덴 선언을 하고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그 이후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지역에서 포격을 가한다든가 이런 일로 신뢰에 금이 가고 남북 교류가 중단된 상태다. 우리 정부가 남북의 교류에 있어 부정적 입장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번에 외교안보팀이 재편되니까 북·일 합의나 주변 정세의 변화를 잘 고려해 판을 다시 짜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지금까지의 남북관계에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세 가지 환경이 조성됐다. 북·일 합의,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9월 아시안게임이다. 흐름 자체를 보면 이제 우리 정부도 남북관계에서 뭔가 바꿔야 하는 시점이 됐다. 지금까지의 볼썽사나운 ‘말 대 말’의 대결, 이런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일본처럼 전향적으로 치고나갈 필요가 있다. 6·4 지방선거 이후 남북관계의 돌파구 마련이 필요하다. 이제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측은 뭐하고 있느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남북한 신뢰 프로세스에서 유연성이 발휘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박=크게 보면 신뢰 프로세스 프로그램이나 동북아평화구상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본다. 새 안보팀이 구성되면 큰 그림은 주도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은 대국적인 견지에서 긍정적인 면을 살려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파트너십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일방적이고 우리 중심적이다.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분야, 예를 들면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것에도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차 중반을 맞았다. 이 시기를 넘기면 임기 내내 남북관계가 어려울 수 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전망은.
▶박=남북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려면 미·일·중·러 다각적 협력의 메커니즘을 잘 구축해야 한다. 과거사나 독도 문제가 있지만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일본과 협조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협력이 이뤄지면 전략적으로 생각할 여지도 생긴다. 반대로 협력이 없으면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김=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 해결될 상황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남북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좀 더 전향적이고 대화 쪽으로 향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 박종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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