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리 월드컵 '보큐즈 도르' 유럽예선 현장

중앙일보 2014.05.31 02:47 종합 18면 지면보기
요리를 마무리 중인 핀란드 셰프. 거울 쟁반에 담겨 아랫면까지 비춰볼 수 있는 요리는 하나의 작품이다. [보큐즈 도르 웹사이트]


주방은 종종 전쟁터와 비교된다. 김이 오르는 가운데 장비는 뜨겁게 달궈지고 살점은 단칼에 베어진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셰프는 날카롭고 뜨거운 것이 가득한 주방에서 치열하게 요리한다.

월드컵 열기 뺨치는 셰프들의 전쟁
"입상 땐 미슐랭 스타보다 더 인정"



 지난 7~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보큐즈 도르 유럽 2014’는 셰프들이 뜨겁게 경쟁하는 승부처였다. 한국에선 낯설지만 서양 요리의 세계에서 ‘보큐즈 도르’는 ‘요리 월드컵’으로 여겨진다. 지역 본선을 유치하기 위해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지고(결선은 항상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다) 우승 셰프는 국민적 스타가 된다. 대회 유치·개최를 위해 스웨덴은 정부 차원에서 나섰다. 대회와 함께 스웨덴 식문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행사도 열었다. 유럽 20개국의 셰프들이 스톡홀름에 모여 내년 초 열리는 결선 진출 카드 12장을 놓고 승부를 벌였다.



 ‘보큐즈 도르’는 ‘요리계의 교황’으로 불리는 프랑스 셰프 폴 보큐즈가 만들었다. 1987년 처음 열린 뒤 2년에 한 번 개최된다. 유럽에서 시작된 대회는 무대를 확장해 유럽·남미·미국·아시아태평양 예선으로 결선 진출 24개국을 정한다. 독일의 ‘IKA 올림픽’, 룩셈부르크의 ‘엑스포가스트 월드컵’과 함께 3대 요리대회로 꼽히지만 셰프들은 ‘보큐즈 도르’야말로 난이도 높은 최고의 대회라고 말한다. ‘요리 월드컵’이라는 비유에 걸맞게 스포츠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압박 속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는 감독·코치·견습요리사(코미셰프)와 팀을 이뤄 관중 앞에서 요리 과정을 선보인다.



동메달을 딴 노르웨이팀의 고기 트레이(맨 위 사진), 우승한 스웨덴팀의 고기 트레이(둘째 사진), 금·은·동을 차지한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의 시상식(셋째 사진). 트럼펫과 북을 동원한 영국 응원단. [보큐즈 도르 홈페이지]
 대회 첫날인 7일 경기장 격인 스톡홀름국제전시장엔 10개의 오픈 키친이 마련됐다. 이날 대회를 치른 나라는 10개, 독일·스페인·터키·프랑스·이탈리아·에스토니아·노르웨이·덴마크·네덜란드·벨기에였다. 조리대 뒤 벽면마다 각국 국기가 걸렸고 전광판 시계엔 러닝타임 ‘05:35(5시간35분)’이 찍혀 있었다. 경기장 가운데에선 중계도 했다.



 고기와 생선 종목으로 치러지는 대회는 구체적인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올해는 스웨덴산 새끼 돼지와 대구·굴·홍합이었다. 두 가지 요리를 12인분씩 만들어야 한다. 팀을 이뤄 수개월에 걸쳐 대회 준비를 함께 해도 현장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선수 본인과 견습 요리사뿐이다. 심판을 겸하는 감독은 대회 현장에선 관여하지 않는다. 코치는 조리대 밖에서 선수의 모든 동작을 꼼꼼하게 살폈다. 시간을 관리하고 조리 과정을 점검하면서 코치한다.



 그 사이 셰프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자르고, 썰고, 갈고, 말고, 끓이고, 굽고, 찌고, 데친다. 요리에 사용되는 세상의 모든 동사(動司)가 동원된 조리법을 선보였다. 하얀 조리복을 입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갖고 노는 셰프들의 세계는 과연 극과 극을 오가는 역동적 세계였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다루던 셰프는 금세 핀셋을 들고 섬세하게 장식용 재료를 다듬었다. 땀을 훔치며 키친을 이리저리 뛰더니 어느새 조리대에 코를 박을 듯 손톱만큼 작은 재료에 신경을 집중하곤 했다.



 오븐과 전자레인지의 온도가 더해 후끈 달아오른 조리대만큼이나 관중석의 열기도 뜨거웠다. 1997년 멕시코 응원단이 마리아치 밴드를 동원한 이래 시끌벅적한 응원은 대회의 볼거리가 됐다. 응원복을 맞춰 입고 함성을 지르는 건 기본에 속한다. 덴마크 응원단은 흰 앞치마를 두르고 막대 풍선을 부딪쳤고 영국 응원단은 북 치고 트럼펫을 불며 기세를 올렸다. 대회 이틀째 날 요리한 스웨덴팀은 개최국답게 가장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칼 필립 왕자도 참석해 국기를 흔들었다. 압도적인 홈팀 응원에 “당연히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따랐다.



 완성된 요리는 거울처럼 비치는 큰 쟁반에 담겨 조형미를 갖춘 작품으로 심판 앞에 선보였다. 고기·생선 요리 심판 각 12명의 심사는 요리 과정만큼 오랫동안 이뤄졌다. 쟁반에 담긴 요리를 촬영하고 시각적으로 심사한 뒤 1인분씩 보기 좋게 덜어낸 후 시식하기 때문이다. 선수는 자신의 요리에 대해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맛은 물론 창의성, 프레젠테이션, 팀워크, 재료 낭비 여부까지 채점 대상이라고 했다.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합산해 순위가 매겨졌다.



 이번 대회 우승은 스웨덴의 토미 뮐뤼매키가 차지했다. 우승 메뉴는 버터와 고추냉이 소스를 곁들인 대구 요리와 네 가지 새끼 돼지 햄 등이었다. 2, 3위는 덴마크·노르웨이였다. 올림픽 시상대처럼 만들어진 단상에서 금·은·동 트로피가 수여됐다.



 지역 예선인데도 서양 요리의 본고장에서 본 ‘보큐즈 도르’의 인기와 권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우승을 목표로 하는 반복 도전은 빈번하다. 덴마크의 셰프 라스무스 코포드처럼 동·은·금상을 차례로 받고 감독으로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결선에 진출할 경우 한 팀이 대회 전 과정에 쓰는 비용만 100만 달러(약 10억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실제 “미국엔 햄버거만 있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며 벼르고 벼른 미국은 2009년 대회를 위해 50만 달러 이상 모금하기도 했다. 룩셈부르크팀 코치로 참가한 디디에 하쿤은 “미슐랭 스타보다 보큐즈 도르”라는 말로 대회의 권위를 설명했다.



스톡홀름=홍주희 기자



“한식 알리려” 김동기 셰프, 아태대회 출전



다음달 26~27일 상하이에선 ‘보큐즈 도르’ 아시아·태평양 본선이 펼쳐진다. 한국·중국·일본·호주·태국 등 10개국이 참가한다. 한국에선 롯데호텔·노보텔앰버서더에 근무했던 김동기 셰프가 출전한다. 김동석(컬리너리 인스티튜트 ASCL 부원장) 감독, 이상민(호서전문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코치, 추현준(서서울 생활과학고) 코미셰프와 함께 3월부터 훈련 중이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팀들이 스폰서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들은 개인 돈을 털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김동기 셰프는 “국가 대항전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니시(요리에 장식 등으로 곁들이는 식재료)’ 중 하나는 반드시 국가 특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며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낸다면 한식을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4회까지 대회를 치르는 동안 ‘보큐즈 도르’ 결선에서 입상한 아시아 국가는 싱가포르(1989년)와 일본(2013년)뿐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