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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의 작가 엔데가 쓴 동화 "잔소리쟁이 엄마가 작아졌어요"

중앙일보 2014.05.31 01:52 종합 22면 지면보기


마법의 설탕 두 조각

'지금, 여기' 어린이책 <4>

미하엘 엔데 글

진드라 차페크 그림

유혜자 옮김, 소년한길

92쪽, 9000원




1995년 9월 1일 미하엘 엔데가 세상을 떴을 때,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그의 대표작 『끝없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자 그라오그라만을 인용해 다음과 같은 부고를 냈다. 그라오그라만은 밤마다 죽고 아침이면 다시 깨어나는 사자다.



 “월요일 저녁, 슈투트가르트의 한 병원에서 미하엘 엔데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자 그라오그라만은 ‘영원히’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질문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럼 미하엘 엔데는 내일 아침 다시 일어나나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그럼! 그는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언제나 판타지 속에서 사는 거란다.’ 아이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미하엘 엔데 저, 이병서 역, 『자유의 감옥』, 보물창고, ‘옮긴이의 말’ 중에서)



부모가 마법에 걸려 작아진 덕에 렝켄은 TV 채널 선택권을 쥐고 맘껏 만화 영화를 본다. [사진 소년한길]
 『모모』의 저자 미하엘 엔데는 아이들을 꿈꾸게 하고, 어른들에겐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새기게 한다. 엔데는 화가인 부모의 외아들로 태어나 대안학교로 이름난 발도로프에서 교육받았다. 31세에 첫 작품 『기관차 대여행』으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모모』를 출간한 것은 마흔한 살 되던 1970년이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잡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모모』가 367쪽 분량의 어른을 위한 우화라면,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92쪽의 날씬한 책으로, 초등 저학년 대상의 ‘엔데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렝켄은 말할 나위 없이 착한 아이입니다.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대해 주고, 렝켄이 원하는 걸 들어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안돼’만 연발하는 부모에게 속이 상한 아이가 요정을 찾아가면서 일이 벌어진다. 마법의 각설탕을 먹은 부모는 아이의 말을 거절할 때마다 키가 반으로 줄어든다. ‘크기’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아이의 시선이 웃음을 준다. 아이는 잔소리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하는 동시에, 보호해 줄 부모가 없다는 데서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다시 요정을 찾아가, 이번엔 부모 말을 거역하면 자기가 작아지는 각설탕을 스스로 삼킨다. 생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소박한 판타지는 결국 아이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어른도 권위로만 찍어 누르지 않게 된다는 해피 엔딩을 맞는다.



미하엘 엔데
 엔데의 이 책은 본지가 교보문고·예스24와 함께 집계한 지난 10년간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에 각각 8위·5위로 꼽혔다.<본지 4월 19일자 18면> 소년한길의 홍희정 대리는 “2001년 출간 이래 70만 부가 팔렸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마법의 설탕’이라는 독창적 소재로 노련하게 풀어내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9년부터 비룡소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모』는 140만 부 이상 판매됐다. 문학으로 분류돼 이번 집계에서는 제외됐다.



 스테디셀러는 대물림하여 읽는 책이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를 핑계삼아 어린 시절 만났던 저자의 책을 새로이 읽는 특권을 누린다. 『모모』에 감동했던 소년 소녀는 이제 잔소리꾼 부모가 돼 아이에게 『마법의 설탕…』을 들려 준다. ‘안돼’를 입에 달고 살며, 키가 반의 반의 반으로 줄어들어도 남들의 시선부터 걱정하는 어른이 된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45년 전 세상에 나온 『모모』가 ‘빨리빨리’와 단기 성과에 익숙해진 우리를 예견했듯.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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