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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쏟아지는 영상·사진 … 그것에 속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2014.05.31 01:43 종합 23면 지면보기
사진작가 이명호의 2013년 작품 ‘나무...#3’. 실제 나무 뒤에 거대한 천을 설치해 촬영했다. 사진과 회화의 층위를 오가며 재현과 현실의 관계를 묻는다. [사진 천년의 상상]


이미지 인문학1

진중권 지음

천년의 상상, 336쪽

1만7000원




글자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이미지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이는 드물다. 이미지는 앎의 대상이 아니라 느낌의 대상으로 통용된다. 게다가 이미지를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오랜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지의 홍수에 매일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숙달된 이미지 비평가가 돼 있다. ‘저 정치인은 지금 국민을 상대로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네’ ‘저 영화배우는 늘 착한 역할만 도맡아 하지만, 실제 삶은 정반대일 것 같아’ ‘저 사람은 인상이 참 나빠. 가까이 하지 말아야겠군’ ‘저 사람 예쁘지는 않지만 은근히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군.’



 우리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이미지를 분석하고, 판단하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처음 보는 카페나 음식점에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그저 느낌이 좋아서’ 불쑥 들어가기도 한다. 이때 그 막연한 인상, ‘느낌이 좋아서’란 곧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해석되어서’인 셈이다. 포털 기사와 소셜 네트워크,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광고 등만 합쳐도 우리는 하루에 수천 개 이상의 이미지를 꾸역꾸역 섭취한다.



 문제는 우리가 만든 이미지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그 이미지들을 재료 삼아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까 하는 점이다.



 이 책은 현실과 가상이 마구 섞여 드는 혼돈의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다양한 철학적 화두를 제시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미지를 공기처럼 물처럼 마시고 흡수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정작 ‘이미지로 사유하기’를 등한시했음을 깨닫게 된다.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주체-객체라는 근대철학의 패러다임을 무너뜨린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은 주체(Subjeckt)에서 기획(Projeckt)으로 진화하고, 세계는 주어진 것(Datum)에서 만들어진 것(Faktum)으로 변화한다.’



 이 선언은 여러 번 곱씹어 읽을수록 등골이 서늘해진다. 인간이 세계를 보고, 만지고, 느끼는 세상을 넘어, 디지털 시스템이 인간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지휘하는 세계 속을 아무런 경계심 없이 살아가는 듯한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기획은 각종 이미지를 둘러싼 담론에 무신경했던 독자들에게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해석하고, 공유하고, 마침내 새롭게 창조하는 우리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푼크툼(punctum)’, 즉 우리에게 상처로 다가오는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프고, 슬프고, 괴롭게 하는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에 저항하며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는 유일한 길은 나를 괴롭히는 이미지들과 당당하게 대면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을 담은 수많은 기록 사진들을 비롯하여,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거대한 상처의 이미지들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세계의 트라우마다. 대중의 가슴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집단적 상처의 이미지, 영원한 푼크툼으로 남게 될 이미지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상처 입히는 만큼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고, 더 나은 삶의 길을 사유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철학은 이미지를 해석하기만 했다. 문제는 사악한 이미지와 투쟁하고, 세상을 바꾸는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마침내 그 이미지들로 세상을 변혁해내는 것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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