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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내 얼굴의 반쪽을 그린 초상

중앙일보 2014.05.31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손철주
미술평론가
내 얼굴은 두껍지 않다. 해서 속이 잘 들여다뵌다. ‘후안흑심(厚顔黑心)의 경영술’이란 말도 있거니와, 나는 일찌감치 경영에는 글렀다는 것을 알았다. 희로애락을 억누르거나 숨기지 못하는 이 얼굴로 말단 조직이나마 제대로 경영하겠는가. 나는 기쁘면 기쁜 대로, 화나면 화난 대로 감정이 고스란히 표정에 드러난다. 게다가 제꺼덕 바뀌기도 한다. 필시 낯짝이 얇은 탓일 게다.



 말은 또 어떤가. 엄청 급한 편이다. 시도 때도 없이 톤이 높아지고, 심할 때는 종결어미를 채 발음하기도 전에 접속사가 먼저 튀어나온다. 어쩌다 방송에 나가 주절거린 내 말을 들어보는 날에는 본디 얇은 내 얼굴이 다시 화끈거린다. 말이 어쩌면 저리도 빠르단 말인가. 어떤 이는 내 속도 모르고 도리어 칭찬한다. 말이 빠른 것은 성의가 가득 차서, 톤이 높은 것은 열정이 흘러넘쳐서 그렇다며 멋대로 분석한다. 사실은 그게 아니니 오직 민망할 따름이다.



 내 평생의 병통을 요약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질언거색(疾言遽色)’이다. 질언거색은 ‘나오는 말이 급하고, 낯빛이 금방 바뀐다’는 뜻이다. 이 생소한 한자어는 집안 조상 중 한 분인 ‘모당(慕堂)’의 문집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했다. 모당은 조선 중기에 오로지 서생으로 살다간 베옷의 처사이다. 그분 성미가 어지간히 조급했던 모양이다. 말은 자꾸 내달렸고 낯빛은 자주 변했다. 이러니 씨는 못 속인다. 무섭다. 내 병도 알고 보면 내림인 것이다.



 모당은 질언거색을 뿌리 깊은 고질이라며 심히 자책했다. 그는 거처하는 곳에 경구 하나를 써놓았다. 그러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쳐다보며 반성했다고 한다. 그가 벽에 써 붙인 내용은 웬걸, 뜬금없다. ‘네 손이 국에 데지 않았느냐(羹爛汝手乎)’라는 글귀다. 왜 느닷없이 국이 어떻고 했을까. 이 말은 출전이 있다.



 중국 후한 시대에 유관(劉寬)이란 관리가 살았다. 너르고 따뜻한 성품으로 신망이 높았던 사람이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벌줄 때 그는 꼭 부들로 만든 채찍으로 때리라고 명했다. 부들 채찍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누가 궁금해 묻자 그는 조용히 답했다. “죄를 깨닫게 하는 게 벌이다. 반드시 아파야 하겠는가. 부끄러우면 고칠 수 있다.”



 유관은 언제나 느긋한 말투와 평온한 안색을 지녔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과연 어느 때 성을 내는지 알고 싶었다. 어느 날 하녀를 시켜 출근하는 유관의 관복에 뜨거운 국을 일부러 쏟게 했다. 하여도 유관은 태연자약했다. 엎어진 국그릇에 당황하는 하녀를 보고 그가 말했다. “네 손이 국에 데지 않았느냐.” 유관의 관후한 자품을 보여주는 일화는 『후한서』에 나오고 『소학』에도 등장한다. 모당이 써 붙인 글귀가 과연 효험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의 문집을 통독해봐도 더 이상 언급이 없었다.



 며칠 전 일이다. 유명한 서양화가 한 분이 내 얼굴을 그린 작은 초상화를 보여주었다. 미술동네를 들락거리다 보니 화가들이 심심풀이로 나를 그린 적이 예전에도 있었다. 볼펜으로 그려 이제 색이 날아간 얼굴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에 먹을 묻혀 단숨에 그린 얼굴도 지금 남아 있다. 이번에 본 초상은 유별나다. 화가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캔버스에 내 얼굴의 반쪽을 그려놓았다. 이걸 일러 ‘반(半)초상’이라고 해야 할까.



 화가에게 굳이 얼굴의 반을 그린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림 속에서 외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내 얼굴이 낯설다. 나를 닮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 얼굴의 반이 분명한데, 그리지 않은 나머지 반쪽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분신(分身)에서 전신(全身)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또 신기하게 느껴진다. 다만 보면 볼수록 나는 적이 안도하게 됐다. 반이 있어서가 아니라 반이 없어서 그렇다. 나의 병통은 그리지 않은 반쪽에 있다고 우기면 안 될까.



 마침 모당도 생전에 초상화 한 점을 구했던 모양이다. 그가 자기 얼굴을 보고 남긴 소감이 얄궂다. ‘네 모습이 내 마음의 반만 닮았네. 보는 이들 내 마음 다는 모르리.’ 모당처럼 글씨 따위를 써 붙이는 건 구질구질하다. 차라리 나의 반초상을 걸어두는 게 낫겠다. 모름지기 부끄러워야 고친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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