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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빨간 버스는 오늘도 달린다

중앙일보 2014.05.31 00:11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오신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휘우웅~ 덜컹!” 잠이 안 왔다. 월요일 아침 7시50분. 여느 때면 앉자마자 이어폰을 꽂고 곯아떨어졌을 시간이다. 매서운 속도로 부닥치며 나는 바람소리, 이따금씩 덜컹거리는 느낌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섰다. ‘혹시 무슨 일 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4년간 오가던 길인걸?’ 옆에 빽빽이 서서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오늘도 내가 탄 빨간색 광역버스는 서울과 성남을 잇는 고속도로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곳곳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출퇴근 시간 서울~경기도 간 고속도로를 달리는 ‘콩나물 시루’ 광역버스도 그 대상 중 하나다. 언론에서 ‘법 위반’이라며 호들갑스레 지적한 풍경은 내게 너무도 익숙한 생활의 일부였다. 아침 수업이 있는 날, 운 좋게 자리에 앉은 경우만 빼면 도심까지 50분을 서서 가는 건 당연했다. 그나마 손잡이를 차지하면 다행이지만, 나중에 탄 십수 명은 계단과 유리문에 바싹 붙어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다. 누구나 묵인하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통학길은 점차 당연한 일상이 아닌 공포의 시간이 되어갔다. 시속 100㎞로 달리던 버스가 추월한 차를 피하느라 양옆으로 심하게 흔들릴 때면 심장이 쿵쾅댔다. 서서 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버스가 충돌이라도 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세월호의 잔상이 자꾸만 스쳤다. 그럼에도 마땅한 대안은 없었다. 몇 해 전 동네 주민들끼리 돈을 모아 관광버스를 전세내자는 안까지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워 흐지부지됐다. 자가용을 살 수도 없는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오늘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길 초조하게 바라는 일뿐이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광역버스가 입석을 받을 경우 버스회사가 처벌을 받도록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운행 횟수도 10% 더 탄력적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출근 시간마다 정원의 절반이 넘는 인원이 추가로 서서 가도 마지막 승객들은 설 자리마저 없어 못 타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버스 수를 늘리거나 이층버스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버스회사도 그 재원을 대는 데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빨간 버스는 쉴 새 없이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 쓰는 돈을 ‘아껴야 할’ 비용으로 보는 태도는 이제 사라질 때도 됐다. 국민의 안전한 일상은 정부가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는 청해진해운의 그것과 다름없다. 오늘도 빨간 버스에 몸을 실은 난 불안한 마음을 삭이기 위해 이어폰의 볼륨을 올리고 애써 잠을 청한다.



오신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대학생 칼럼 보낼 곳=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www.facebook.com/i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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