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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22화> 전화기가 울리면

온라인 중앙일보 2014.05.30 10:08
아버지는 전화기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다. 아버지는 전화가 오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전화기 배터리가 빨리 줄어든다면서 불평할 정도다.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줬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으면 어떡하냐는 이야기도 한다.



솔직한 이야기로, 내게는 부모님의 전화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이건 웬 불효자 인증 같은 소리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가끔은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과의 전화에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적이 수십 차례였다.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전화, 아버지도 아프고 경기가 좋지 않아 사업을 접어야 겠다는 전화 등 다양했다. 오히려 사업이 어려우니 돈을 좀 해드리라는 전화는 양반이었다.



지금도 나는 전화가 울리면 1초만에 받는 편이다. 가끔씩 어떤 사람들은 내게 전화를 왜 이리 빨리 받느냐고 묻는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다. 빨리 어떤 일인지 알고 싶은 습관이 생겼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낼때 '야' '형' '현택아' 등으로 말을 거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이름만 달랑 부르지 말고 용건도 같이 말하라"고 말해준 적도 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전화를 받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거는 것은 좋아하게 됐다.



암환자와의 통화에도 요령이 있다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나름의 요령이 있는 편이다. 암환자는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기껏 말해봐야 10분 정도겠지만. 하지만 항암치료로 몸이 쇠약해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말을 자꾸 걸어줘야 한다.



뻔한 질문부터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다. 밥은 드셨나요. 그러면 밥 이야기는 1분에서 2분 정도 한다. 누가 만들었고, 오랜만에 만난 누구랑 밥을 먹었고, 밖에서 먹었다면 식비는 누가 냈고, 만난 사람은 언제적 친구이고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 밥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나올 이야기는 많다. 요즘에 주꾸미가 제철이고, 역시 갈치 구이는 제주도산이 비싸도 맛이 좋고 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다 못해 입맛이 없어서 라면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무슨 라면인지 밥은 말아 먹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산책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당수의 암환자들은 불편하더라도 산책 등 거동을 자꾸 하려고 한다. 그래야 운동이 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아버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집 앞 실버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온다. 그러면 아버지보다 10살 이상은 많은데 건강이 좋아서 공놀이를 하는 형님들 이야기를 하게 된다. 부럽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는 올해를 넘길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어, 내가 별로 좋아하는 이야기 주제는 아니다.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도 있다. 방송 용어로 '마가 뜬다'(대사나 장면 사이에 어떤 정적이 흐른다) 정도의 느낌이 들 때다. 그럴 때는 오늘 한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된다. 오늘은 어떤 글을 썼고, 누구를 만났고, 날씨가 덥고 등의 이야기다. 바깥세상, 그 중에서도 비즈니스 환경은 은퇴한 암환자에게는 결코 접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건강했을 시절, 본인들이 누비고 다녔을 곳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쉽게 설명해 드리면 좋아하신다.



질문도 많이 나오고, 가끔은 훈수도 두신다. 그 훈수가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버지는 적어도 훈수를 두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을 하더라도 편안하게, 그리고 자주 전화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버지와 만나면, 아버지는 전화를 자주 거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절친 준수 삼촌의 일상에 대해서는 5분 가량 이야기를 한다. 아들 결혼 준비가 어떻고, 사업이 어떻고 등의 이야기다. 신갈에 거주하는 작은아버지 이야기도 한다. "형님께 소고기 식사를 모시고 싶다"면서 저녁을 사줬는데,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면 돈이 많이 들어서 자주 못 볼 것 같아, "다음부터는 뚝배기 불고기나 한 그릇씩 하고, 대신 자주 보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외에 격언 등 좋은 글귀를 이따금씩 보내주는 아버지의 이종사촌 이야기도 하신다.



전화를 받을 때 반갑게 받는 것도 절대 빼먹어서는 안 될 요소다. 아버지는 투병을 시작한 뒤부터, 전화를 걸면 "얘, 전화를 받을 수 있니"라고 꼭 물어본다. 전화로 취재를 하는 것이 직업인 아들이고, 게다가 아버지가 전화를 하는데 무슨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없고가 있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주저하게 된다고 한다. 암투병으로 자신감을 상실해서다. 자신이 전화를 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늙고 병들었으니 전화를 해도 민폐가 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카카오톡으로는 사진을 많이 주고 받자



아버지는 사진을 찍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암 투병으로 바짝 마른 몰골을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가족들끼리는 오히려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경향이 크다. 오히려 자신을 잊고, 자신을 생각하지 않을까봐 두려운 감정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뭘 먹거나(아버지의 주된 관심), 외국에 출장을 갔을 때에는 반드시 사진을 찍어서 보낸다. 해외에 못 가보신 아버지가 궁금해 하시는 것이 크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걱정이 되시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것 보다는 자신은 못 접한 해외 문물을 대리체험하는 마음 가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흥국가들이 있으면 자꾸 가보고, 그 쪽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있는지 자꾸 물어보시는 편이다. 가끔은 내가 못 찾았던 취재 포인트를 이야기 해줄 때도 있다.



내가 보낸 사진이 마음에 들면, 아버지는 짧게 답을 한다. "Good"이라고. 지방에 다녀올 경우에는 "맛있겠구나" 등의 답도 있다. 그럴 때는 꼭 포장을 해서 아버지 댁에 들리는 편이다. "일이나 하고 들어가지 왜 이걸 사왔냐"는 엄마의 핀잔 속에, 아버지는 담담히 포장을 뜯어본다.



* ps. 내 아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빠"라고 달랑 두 글자를 보낸다. 차마 아내에게는 "용건을 같이 말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냥 또 가슴을 떨려하며 "응?"이라고 보낸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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