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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대피시키다 불 끄러 갔던 간호조무사 결국 …

중앙일보 2014.05.29 02:30 종합 6면 지면보기
“간호조무사가 남편을 구했다던데 정작 그분은 돌아가셨다니….”


홀로 사투 김귀남씨 주검으로 발견
"엄마 왜 이렇게 빨리 떠나" 가족 오열
현장 출동한 소방관 아버지도 희생

 28일 광주광역시 쌍암동 첨단종합병원에서 만난 김정자(71·여)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 화재사고에서 구출된 전광웅(73)씨의 아내다. 이날 2층에 입원했던 34명 중 20명이 희생됐고 전씨 등 14명이 일단 목숨을 건졌다.



 구조된 이들과 효사랑 요양병원 측이 가족에게 전한 얘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김귀남(52·여·사진)씨는 불이 나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들의 대피를 돕다가 불이 난 3006호 다용도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국 다용도실 앞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김씨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한 명 한 명 대피시키기 불가능하다고 보고 불을 끄러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빈소는 광주 신가병원에 차려졌다. 딸 노진화(29)씨는 “지난봄 사 드린 향수를 다 쓰지 못하고 왜 이렇게 빨리 떠났느냐”며 오열했다. 김씨는 2006년 남편과 사별하고 2010년 요양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사고 6시간 전 김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친구 정미현(52·여)씨는 “‘노인 보살피기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부모 같은 분이어서 괜찮다’고 했다”고 전했다. 구출된 환자 가족은 물론 유족들도 “의인이 먼저 떠나 가슴 아프다”며 “김씨를 의사자로 지정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효실천사랑나눔병원 이사문(왼쪽) 이사장이 28일 병원 본관 앞에서 사죄하고 있다. [사진 광주일보]
 광주와 장성군 등지의 14개 병원에 차려진 희생자 빈소에서 유족들은 “내가 죄인”이라고 자책했다. 숨진 임동운(62)씨의 형 동혁(64)씨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동생을 20일 전에 내가 입원시켰다. 동생을 희생시킨 형이 되고 말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숨진 김재명(83)씨의 큰아들 도현(53)씨는 “아버지의 음주를 말리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재명씨는 술을 마시면 기억을 잃는 알코올성 치매 증상 때문에 입원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자유롭게 산책을 할 정도였다. 도현씨는 “이틀 전 아버지가 전화해 ‘한 번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출장 중이라 바로 모시러 가지 못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의 아버지도 희생됐다. 담양소방서 곡성119안전센터 홍왕석(40) 소방교는 잠을 자다 출동 명령을 받았다. 아버지(홍기광·71)가 입원 중인 병원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달려갔지만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옮겨진 뒤였다. 할머니가 숨진 임채휘(36)씨는 이날 요양병원 정문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읽은 성명서에서 “일부 사망자 팔목에 묶였던 자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병원 측에서 관리상 편의를 위해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복용한 정황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불이 났는데도 환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11시쯤 정홍원 국무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박준영 전남지사가 요양병원에 왔으나 병원 관계자와만 면담하고 유족들은 만나지 않은 채 10분 만에 병원을 나섰다. 유족 김정현(45)씨는 “정부 측 사고 책임자들이 어떻게 유족을 외면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장성=신진호·고석승·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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