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문회 도입 뒤 총리 후보 5번째 낙마

중앙일보 2014.05.29 02:25 종합 4면 지면보기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되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인사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사퇴하거나,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돼 인준을 받지 못하거나, 서리(署理)에 그친 사례가 적지 않다. 서리는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밟기 전 총리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김대중 정부 시절(2000년 6월) 도입된 인사청문회 제도다.


박근혜 정부선 김용준 이어 두 번째

 당장 박근혜 정부에서만 초대 총리 후보자로 내정됐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에 이어 안대희 후보자까지 1년3개월 만에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전에 자진사퇴를 택했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국회 표결에서 첫 번째 낙마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명했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었다.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 후보였던 장 후보자에 대해 김 대통령은 “이제 여성 대통령만 나오면 된다”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장 후보자는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 학력 허위기재 의혹 등이 더해지며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이후 김 대통령은 언론사 최고경영자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을 총리 서리로 세웠으나 그 역시 부동산 투기의혹과 자녀의 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인준받는 데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2010년 8월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인사청문회 도중 자진사퇴했다. 이 대통령은 ‘40대 김태호 총리’ 카드를 빼들었다. 여권 차기 구도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한 거짓 해명이 드러나 중도하차하면서 본회의 표결 기회도 얻지 못했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지 21일 만이었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낙마한 총리 후보자는 이들과 안대희·김용준 후보자를 포함해 5명이다. 정식 총리가 되지 못한 ‘서리’도 적잖다.



대한민국 첫 총리 지명자인 이윤영씨는 네 차례나 인준을 받지 못하고 총리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 당시 신성모·이갑성·허정·백낙준·백한성, 4공 말기의 박충훈, 5공 시절의 이한기씨 등도 서리에 그쳤다. 민주당 정권 때(1960년) 김도연씨는 단 하루 총리서리를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 공동정부 파트너였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야당의 반발로 5개월 동안 서리 꼬리표를 달고 있어야 했다.



이소아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