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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 좋은 책] ⑭ 샘 해리스 『자유의지』

중앙일보 2014.05.29 01:46 15면 지면보기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형상화한 귀스타브 도레의 1866년 작품. [사진 위키피디아]


자유의지(自由意志·free will)는 법률·심리·종교·철학 용어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특히 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한다. 자유로운 의지라는 게 있어야 어떤 사람의 잘못을 탓하고 그 책임·죗값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내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그건 단지 착각일 뿐



 범죄가 자유의지 아닌 유전자 탓, 자라온 환경 탓, ‘귀신에 홀린’ 탓 등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나는 죄가 없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프랑스 작가·철학자 알베르 카뮈(1913~60년)가 지은 소설 『이방인(L’Etranger』(1942)에 나오는 뫼르소처럼 살인하고서도 재판에서 “모두가 태양 탓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기독교·이슬람이 말하는 최후의 심판에서 인간을 심판할 근거가 타격을 입는다고 볼 수 있다. 나로 하여금 죄 짓게 만든 원인은 궁극적으로 신(神)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적인 사람들도 칭찬할 게 없다. 그들은 영웅으로 ‘프로그램’돼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논란은 수천 년 넘게 현재진행형이다. 가톨릭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입장, 개신교와 무신론은 없다는 입장이다. 어쩌면 영원히 결판나지 못할 싸움이다. 한데 뇌과학의 연구 성과가 해묵은 자유의지 논쟁에 주요 당사자로 끼어들었다. 1980년대 초반 실험에 따르면 뇌가 결정을 내리는 게 먼저고, 결정에 대해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예컨대 팔을 들거나 의자를 움직이겠다는 결정이 먼저다. 우리가 이 결정을 의식하는 것은 나중이다.



『자유의지』의 영문판 표지(왼쪽)와 한글판.
 철학자이자 뇌과학자인 샘 해리스가 지은 『자유의지』는 뇌과학을 근거로 “자유의지는 없다” “자유의지는 신화다”라고 단언한다. 자유의지론은 틀리고 결정론(決定論)이 맞는다는 것이다(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결정론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일정한 인과관계에 따른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인간은 ‘생체역학적(biomechanical)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을 컨트롤한다고 착각하지만 우리는 마음의 주인이 아니라 마음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해리스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이전 상태다.



 『자유의지』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강력한 논거를 제시한다. 예컨대 사이코패스는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이코패스의 영혼을 타고난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자유의지』는 죄·범죄의 문제뿐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인생 전반에 많은 것을 암시한다.



 해리스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나 믿음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착각’한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 어떤 종교를 믿을 것인가로부터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와 같이 아주 사소한 문제까지 뭔가를 결정하는 게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고 또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원인이라면, 우리는 우선 좀 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해리스는 과학 공동체가 ‘자유의지는 환영이다’라고 선포한다면 그 결과 진화론 못지않은 문화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의지는 환영(幻影)이다’라는 자각은 개인에게는 새 출발을 촉구한다. 자유의지라는 게 없더라도 의식은 있다. 세상에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무의식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해리스는 우리가 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따지기 위해 우리 의식의 가닥과 흐름을 의식하고 또 추적해 볼 것을 주장한다. 또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분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분간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공포나 걱정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게 해리스의 주장이다.



 해리스는 결정론을 표방하지만 운명론자는 아니다. 해리스는 결정론과 운명론의 차이를 강조한다. 운명론은 ‘모든 일은 미리 정해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이다.



 해리스는 불교 명상을 한다. 『자유의지』의 이론적 바탕에는 뇌과학뿐 아니라 불교의 업(業·카르마·karma)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전생을 통해 쌓인 업을 감안하면 이번 생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된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숙명론이 맞는 게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한 한 스님의 해답은 이렇다. 업은 바짝 마른 거미줄과 같다. 일순간에 다 타버려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자유의지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자유의지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자유의지가 있다는 뇌과학 실험을 설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남미학 석사학위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 단국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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