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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종교에 묻다 <3> 가톨릭 차동엽 신부

중앙일보 2014.05.29 01:25 종합 23면 지면보기
차동엽 신부는 “도시의 얼굴은 모자이크와 같다. 각자의 얼굴이 모인 게 도시의 얼굴이다. 도시를 바꾸려면 나를 바꾸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일 경기도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에서 차동엽(56) 신부를 만났다. 그는 해군 학사장교 출신이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3년간 해군에서 복무했다. 군함을 타진 않았다. 그러나 배의 침몰 등에 대비한 비상 훈련은 여러 차례 받았다. 이후 사제가 된 그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선장과 선원 등 아무도 비상 훈련이 돼있지 않다는 게 한눈에 보이더라”고 말했다. 그에게 ‘세월호의 아픔과 치유’를 물었다.

"국가 개조하려면 나부터 한 점 누룩이 돼야"



 - 함정 침몰에 대비한 훈련은 어떤 건가.



 “함장이 버틸 대로 버티다가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 있다. ‘퇴함(退艦)’ 명령이다. ‘퇴함!’하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 바다로 뛰어내려야 한다. 그런데 머리가 아래로 향하게 거꾸로 떨어지면 충격 때문에 죽을 수 있다. 한 손은 낭심을 잡고, 다른 손은 코를 막고 선 채로 뛰어내려야 한다.”



 - 그걸 어떻게 연습하나.



 “수심 깊은 수영장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한다. 군함마다 높이가 다르다. 다이빙대도 7m, 10m 등 여러 높이에서 뛰어내린다. 쉽지 않다. 막상 10m 높이에 서보면 무서워서 발이 안 떨어진다. 그래도 발을 떼 본 경험이 있기에 뛰어내리는 거다. 재난 훈련이 그만큼 중요하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부터 두려웠을 거다. 모의훈련을 했다면 승객들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다.”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압축 고속 성장을 했다. 차 신부는 “그 와중에 자연 숙성 과정이 생략됐다. 양심과 매뉴얼이 통하는 선진 문화를 일구려면 배양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생략했던 과정, ‘세월호 참사’는 거기에 대한 대가이자, 강력한 경고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차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을 하나 꺼냈다. ‘한 도시의 모습은 그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얼굴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다.’ 차 신부는 자신의 가슴부터 겨누었다. “종교인들이 그동안 남에게 돌 던지는 행위를 많이 했다. 사람들은 종교인을 통해 남을 규탄하고, 돌멩이 던지는 법을 잘 배웠다. 우리 사회의 정의구현은 주로 그런 식이었다. 반면 자기 반성은 없었다.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교육이 ‘자기 성찰’보다 ‘사회 비판’ 쪽으로 너무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



 - 자기 성찰, 왜 중요한가.



 “도시의 얼굴이 뭔가. 구성원들의 얼굴이 모여서 만들어진 모자이크다. 사람들은 ‘도시의 얼굴이 왜 이래?’라며 분노를 쏟아낸다. 그런데 알아야 한다. 자신의 얼굴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



 - 다들 ‘국가 개조’를 말한다.



 “그건 나라의 얼굴을 바꾸는 일이다. 관료 개혁, 민관유착 등 구조적 문제는 당연히 고쳐야 한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하나의 모자이크다. 각자가 그걸 바꾸지 않으면 나라의 얼굴은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도 소용이 없다. 결국 ‘나의 얼굴’을 바꾸어야 한다.”



 - 그건 쉬운 일인가, 어려운 일인가.



 “예수님은 사회를 한꺼번에 바꾸는 쿠데타식 개혁을 믿지 않았다. 하늘나라는 밀알과 같다, 겨자씨와 같다, 누룩과 같다고 했다. 하나의 점에서 퍼지는 거다. 누구를 중심으로 퍼지겠나. 나를 중심으로 퍼진다. 그러니 나 자신이 한 점의 누룩이 돼야 한다.”



 - 한 점의 누룩이 되면.



 “빵이 부풀어 오른다. 우리 사회가 부풀어 오른다. 대한민국이 부풀어 오른다. 그럴 때 새 빵이 만들어진다. 국가가 개조된다.”



 차 신부는 유대인을 예로 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10만 명이 죽었다. “유대인들은 그 사건을 통해서 자기 성찰에 들어갔다. 왜 게르만 민족이 우리를 미워했나. 확실히 자신들이 수전노로 산 게 있었다. 유대인은 돈을 안 풀었다. 기부 문화도 없었다. 여기에 대한 뼈저린 성찰이 있었다. 오늘날 유대인 갑부들은 어떤가.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은 천문학적 액수를 사회에 기부했다. 유대인은 600만 명의 죽음을 통해서 그걸 각성했다.”



 ‘세월호’는 우리 역사에서 무엇으로 남게 될까. 차 신부는 세월호를 점(點)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선(線)으로 보면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 말이다. 그걸 위해 차 신부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가장 작은 일, 왜 그걸 하나.



 “미국에 경제대공항이 닥쳤을 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봤다. 모두 안 통했다. 속수무책이었다. 공황의 골이 너무 깊었다. 결국 라디오 방송에서 아주 단순한 연설을 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걸 동원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합시다.’ 당시 미국 국민은 정부만 바라봤다. 어떤 정책을 쓰는지, 어떤 물자를 가져오는지만 신경 썼다. 대통령은 반복하고, 반복해서 호소했다. 어느 순간 국민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그게 경제대공황 극복에 큰 힘이 됐다. 결국 미국의 얼굴을 바꾸었다.”



 - 세월호 희생자 유족의 아픔이 크다.



 “자식 잃은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나. 그런데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을 한번 짚어봤으면 한다.”



 -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이라면.



 “충남 논산에 간 적이 있다. 천주교 신자인 남성분이 나왔는데 아주 활달하고 얼굴도 밝았다. 굉장히 즐겁게 봉사활동을 하더라. 속으로 ‘참 해피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알고 보니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분이었다. 한참 슬퍼하다가 ‘아들이 살지 못한 어떤 삶을 대신 살아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 몫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더라. ‘아들아, 아빠가 봉사한다. 보고 있지?’라면서. 그분과 헤어질 때 자성했다. 세상에 저런 분도 있구나.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그분은 슬픔을 자신의 방식으로 승화시켰더라. 삶에서 누구나 슬픔을 겪는다. 그렇다고 슬픔에 빠져 죽어선 곤란하지 않나. 슬픔을 어떻게 처리할 건가. 그 또한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가 던져야 할 물음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차동엽 신부=1958년생. 서울 관악구의 달동네 난곡에서 자랐다. 연탄과 쌀 배달을 하며 유년을 보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에 들어가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으로 석사, 사목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천가톨릭대 교수, 미래사목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 『무지개 원리』는 18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밖에 『천금말씨』 『희망의 귀환』 『잊혀진 질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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