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in 문화人] 최효순 극사실주의 화가
국내 몇 안 되는 극사실주의 화가이자 아산이 고향이라는 점이 최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봐도 최 작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그를 만나러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당림미술관을 찾았다.
이경렬 당림미술관 관장은 “웬만한 스님보다 내공이 깊은 ‘수행자’”라고 최 작가를 설명했다. 화가와 수행자, 그 둘 사이에는 과연 어떤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내성적인 성격과 고집이 만들어내
“제가 좀 내성적이에요. 사람들 만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최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리고 고향 아산에 내려온 것 또한 내성적인 성격이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아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이후 줄곧 서울 생활을 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공간에 적응하는 것이 그에겐 쉽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편하게 작업하려고 2000년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외딴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창작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성적인 제 성격이 제 삶에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극사실주의 화풍을 고집하게 된 것도 성격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반항하듯이 하늘과 구름만 줄기차게 그렸다. 조금 더 자세하게, 조금 더 사실적으로. 그렇게 구름과 하늘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후 그는 ‘극사실주의 화풍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하늘과 구름에 멈추지 않고 그의 삶 가까이 있는 대상들을 관찰하며 소재로 삼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작품이 되죠. 그런데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리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질적인 대상을 함께 배치하는 ‘도치법’을 쓰는 겁니다. ‘신공룡시대’라고 이름 붙여진 이 그림(사진 2)도 그런 맥락이에요. 새벽에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굴착기 두 대가 서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숲을 점령한 공룡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 작가는 그 순간을 캔버스에 옮겨놓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비행기와 나비를 등장시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파괴’를 표현했다.

몇 년 전부터 극사실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극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하는 젊은 작가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작업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최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지만 극사실주의 작가들 대다수가 캔버스에 사진 이미지를 출력해 그 위에 덧칠을 한다.
“어느 게 좋다고는 말 못하죠. 그런데 나는 내 방법이 좋아요.”
극사실주의 화풍 자체가 고도의 세밀함을 요하므로 작품 완성에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최 작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마저도 아낀다.
“저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무조건 1년에 여섯 작품은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몰두해요. 도 닦는 기분으로 작품을 그리죠. 그런데 전업 작가지만 돈 되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에요.”
한국에서 그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전업 작가들 중 상당수는 갤러리와 계약해 찍어내듯 작품을 그려내고 때로는 작품을 팔기 위해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최 작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돈에 작가적 양심을 팔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저는 그냥 이게 좋아요. 나는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가 와서 내 그림을 보고 그 어떤 느낌을 받는다면 그걸로 됐어요. 그냥 편히 오세요. 그리고 보고 가시면 됩니다.”

글=윤현주 객원기자 20040115@hanmail.net, 사진=채원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