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답답함은 그동안 시나브로 우리를 불편하게 했지만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진실을 대면하게 된 탓일지 모른다.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인 자살률이나 세계 최저인 출산율 따위의 통계를 들을 때마다 막연히 느꼈던 불안감과 세월호의 참사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무능력한 국가와 자신의 권리 실현에는 집요하지만 공동체적 삶에 대한 배려에는 인색한 황폐한 사회가 결합했을 때 인간 존엄의 기초인 생명마저도 가벼운 통계의 대상이 되고 마는 세상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삭막한 세상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이번 참사에서 안전·구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대해 관련 선원과 해운사, 해경, 민관 감독기관 모두가 직접적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 추궁만으로 이번 참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최소한의 직업윤리마저 내팽개친 그들 모두가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제 몫 챙기기에 바쁜, ‘고립된 개인들의 사회’가 낳은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문제는 이러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간단할 리 없다는 데 있다. 개인의 자율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라면 자기책임에 철저한 개인으로 교육받고 노동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물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로 충만한 공동체적 덕성과 사회적 조건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런 사람이라면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의 디딤돌이 될 교육, 사회 필수시설, 복지를 국가와 사회가 부실하게 제공함으로써 동료 시민끼리 서로 안위와 삶의 질을 배려하며 살 만한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생존의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우선적으로 회의할 수 있다.
이 문제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님은 현대 정치철학의 절충적 경향이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자율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구성원 모두에게 기본적인 생존의 버팀목을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와 사회는 더 이상 공동체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공익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자원을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공공시스템 또한 지속 가능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남은 과제는 한국 사회가 개인의 자율성과 국가와 사회의 공동체적 조건을 어느 수준에서 조화롭게 형성할 것인지의 문제다.
결국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맞게 된 근본적 성찰의 결과물인 국가와 사회의 가치 성향은 구성원 전체의 공론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러한 난제를 해결할 정치적 판단력과 사회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가? 시민의 정치 참여를 선거법과 정당법의 족쇄로 묶어두는 한편 사표(死票)를 남발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통해 선거만 지나면 시민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정치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여기에 끊임없이 반정치·탈정치를 조장하는 정치혐오 문화 속에서 정치적 자율성을 가진 시민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이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 짙게 드리운 또 다른 성찰적 질문이다. 우리들 대한 국민은 과연 성찰적 각성을 통해 자율적 개인들이 서로 공존공생하는 국가와 시민사회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을까? 세월호의 영령들이 우리 사회에, 우리 국민에게 준엄하게 묻는 질문이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