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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서민이 못 믿는 '서민 행보'

중앙일보 2014.05.29 00:38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 SUNDAY 기자
유재석은 대중목욕탕을 찾아 어르신의 때를 밀었고, 박명수는 길거리 트럭에서 수박 한 통을 샀다. 노홍철은 어린 시청자들을 ‘부모님’이라 부르며 발을 씻어 주더니 정형돈은 청렴을 강조하며 헐벗은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요 근래 예능 프로 ‘무한도전’에선 스타들의 선거운동이 펼쳐졌다. 프로그램이 6·4 지방선거와 때를 맞춰 벌인 프로젝트였다. 향후 10년을 책임질 차기 리더를 뽑는다는 설정하에 출연자들이 거리로 나가 표심을 자극했다.



 이는 예능 아닌 예능의 리얼리티이자 현실의 풍자였다. 대통령선거든 지방선거든 때만 되면 우리가 보게 되는 그 장면들을 연상시켰다.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악수하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나 떡볶이를 사 먹는 후보자들-. 국밥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운다거나 보육시설을 찾아 어린이들을 두 팔로 안아 들어 올리는 모습도 선거철 클리셰라 할 만하다.



 이번 선거에도 예외는 없었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예비후보 때부터 서민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노숙자들에게 배식 봉사를 하고 쪽방촌을 찾았다. 소방관·환경미화원·시각장애인 등 소외 계층과 사회에 공헌하는 이들의 일상을 연이어 경험했다. 박원순 후보는 ‘소박한 삶’을 키워드로 삼았다. 캠프 측은 낡은 문짝을 잘라 만든 사무실 회의 책장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재벌 출신 후보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 의미를 담았고, 밑창이 해진 후보자의 구두가 공개됐다.



 서민 행보는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겐 필수 전략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커뮤니케이션 코치인 존 네핑저와 매튜 코헛은 성공하는 사람들을 사례 분석한 결과 그 핵심이 강인함과 따뜻함에 있다고 봤다. 두 요소야말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이자 리더십이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사람들을 따르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따뜻함에 무게를 뒀다. “보다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따뜻함이다.”(『어떤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가』) 이를 선거에 적용하자면 당선을 위해서는 따뜻함으로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고,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행할 방법이 서민 행보라는 얘기다



 다만 이제는 전략을 바꿀 때다. 더 이상 틀에 박힌 방법으로는 유권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한다. 평소에는 보여 주지 않는 행동, 실제와는 다른 과장된 모습에 ‘서민 코스프레’라는 표현이 생겨날 정도다. SNS에선 “차라리 대부업체서 돈 빌려 쓰고 연체를 며칠 해 보라”거나 “쓸 때 쓰고 아낄 때 아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서민”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이 와중에 지지자들끼리는 상대야말로 서민 흉내를 낸다며 흠집 내기 공방을 벌인다.



 정보는 넘치고 유권자들은 냉철해졌다. 깜짝 이벤트에 표를 얻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혹여 어설픈 시늉만 냈다간 그간의 명성도 한순간 무너진다. 무엇보다 따뜻함은커녕 서민의 신뢰도 못 얻는 서민 행보, 그 효능을 다한 것 아닐까.



이도은 중앙 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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