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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콩 심은 데 팥 나랴

중앙일보 2014.05.29 00:38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예정설이 맞는다면 요즘 KB금융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들도 얼마든지 납득이 된다. 은행 전산시스템을 바꾸는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일을 놓고 왜 사외이사들은 행장·감사가 문제가 있다며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접수조차 안 하는지, 왜 행장은 금융 당국에 그런 사외이사들을 고자질하고 법적 대응에 나섰는지, 왜 회장과 행장은 서로 만나 대화로 푸는 것조차 힘들어하는지, 왜 이 틈에도 은행 안에는 어느 쪽에 줄대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만 잔뜩인지, 일련의 물음표들이 단숨에 풀린다. 본질이 KB금융의 고질병, 낙하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잠시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해 6월 KB금융 회장에 내정된 임영록 회장이 “(도약을 위해)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열성적으로 말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누가 그를 그 자리에 밀어줬을까. 과연 그는 전임자들과 달리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한 KB금융 인사는 “(문책 안 당하고) 무사히 퇴임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란 소리까지 했다. 은행 환경이 어렵고, 실적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시기에 은행을 잘 모르는 속칭 관피아(관료 마피아) 출신이 내려왔으니 앞날이 뻔하다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임 회장은 처음부터 허덕였다. 그는 노조 반발에 막혀 2주일 만에야 출근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약속한 후였다. 한 달 뒤인 7월 12일 취임식을 가진 그가 정식으로 회장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도 노조위원장을 만난 거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으며 내부 출신 은행장을 선임하겠다”고 또 약속해야 했다. 공기업에서 하듯 낙하산 취임 공식(노조 반발 → 당근 제시→ 백기 투항)을 그대로 따른 셈이다.



 한 달 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내정됐을 땐 혼란이 더 커졌다. 이 행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이 정부에서 뜬다는 이른바 연피아(금융연구원+마피아)의 줄을 타고 내려왔다는 설이 파다했다. 노조는 왜 낙하산 행장이냐며 따지면서도 임 회장이 고의로 약속을 어긴 건지, 애초 행장을 자기 뜻대로 선임할 힘이 없었는지를 놓고 궁금해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줄을 타고 온 회장과 행장은 걸핏하면 삐걱거렸다. 행장이 인사 혁신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할 때 회장은 “원샷 인사를 하겠다”고 얘기하는 식이니 줄댈 곳 찾느라 직원들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금융지주체제가 출범한 2008년부터 낙하산 4대째, 정통성 없는 회장과 행장 간 갈등·알력이 KB금융의 숙명처럼 된 것이다. 이를 지주회사라는 시스템의 문제로 몰아가는 쪽도 있으나, 본질을 흐리는 얘기다. 같은 지주회사지만 신한·하나금융은 문제없이 잘 돌아가지 않는가. 신한·하나와 KB의 차이라고는 낙하산 회장이 없었다는 것뿐이다.



 낙하산으로 머리가 흔들리는데 몸통이 성할 리 없다. KB금융은 만신창이가 됐다. 2001년 국민+주택 합병은행 탄생 땐 국내 1위, 세계 100대 은행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13년이 흐른 지금은 국내 3위로 전락했다. 내부 통제력을 잃은 탓에 대형사고 단골손님이 됐다. 국민주택채권 위조, 도쿄지점 횡령·자살, 카드 정보 유출, KT ENS 대출사기 등 최근 이슈가 된 사고만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다시는 금융이 못나 망국의 길을 걷지 말자며 1997년 외환위기 때 혹독한 구조조정을 한 결과가 이건가. 이런 꼴을 보려고 국민이 금을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맸으며 수만 명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했나. 그렇게 어렵게 일궈온 은행에서 수억~수십억 연봉 받고 행장·회장이 하는 일이 고작 이런 진흙탕 싸움인가.



급기야 리베이트 수수설까지 돌자 금융 당국은 특별 검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회장·행장을 같이 문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나아질까. 낙하산 5대째만 안 이뤄져도 다행일 텐데, 쉽지 않을 듯하다. 벌써 후임을 노리는 이들이 뛴다는데 면면을 보니 이런 소리가 절로 날 판이다. “콩 심은 데 팥 나랴.”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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