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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제도 개혁은 사회적 불평등 해소하는 길"

중앙일보 2014.05.29 00:28 경제 4면 지면보기
이시다(左), 반뮐러(右)
“임금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이다.”


임금 문제 세계적 석학 이시다· 반뮐러 교수 국제심포지엄
"일본 노조, 고용 지킬 수만 있다면 사소한 개편 의미 없다고 인식 변화"

 임금문제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인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이시다 미쓰오(石田光男) 교수와 독일 튀빙겐대 라인하르트 반뮐러(Reinhard Bahm·ller) 교수가 한목소리로 내린 결론이다. 28일 노사발전재단(사무총장 엄현택)이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연 국제심포지엄에서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국내외 학자와 정부, 노사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시다 교수는 ‘일본의 임금제도 개혁과 노사관계’를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까지 일본 노조는 근로자 간 개인경쟁을 촉구하는 경영진의 노무관리를 공격으로 봤다”며 “하지만 이런 투쟁에 대한 고집은 고용안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생산성 향상과 분배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인식은 노조의 리더십 전환으로 이어졌고, 능력주의가 자리 잡게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70년대 초에 도입된 일본의 능력주의 임금체계는 연공급에 기반하고 있었다. 생산성이나 성과와 상관없이 오래 일한 사람이 무조건 많이 받는 형식이다. 이와 관련, 이시다 교수는 올해 2월 본지와의 대담에서 “한국은 지금도 일본의 70년대 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면 기업과 고용이 위험해진다”고 경고했었다.



이날 발제에서도 이시다 교수는 “9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경쟁에서 일본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임금개혁이 불가피했다”며 “근속 연수가 길다는 것만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불공평을 제거해야 했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역할급이다. 어느 직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것이다. 고난도 역할을 수행하면서 성과를 많이 내면 돈을 많이 받고, 비교적 수월한 업무를 수행하면 임금이 낮아진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 기업이 역할급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 기업이 임금체계를 글로벌 시장 변화에 맞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노조의 인식변화가 따랐기 때문이다. 이시다 교수는 “일본 노조는 임금제도 개편을 둘러싼 (조합원의)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노조가 조합원이나 특히 노조 내 계파의 반발을 의식해 임금제도 개혁에 미온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는 “노조에 있어 조합원의 고용만 지킬 수 있다면 임금제도라는 ‘사소한’ 개혁을 두고 대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분위기가 일본 노조 전체를 덮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조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인상”이라며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경계했다.



 라인하르트 반뮐러 교수는 ▶독일에서 기존 임금시스템은 시대성을 잃어 직업 분류와 근로조건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생산직과 사무직 간의 불공평한 임금현상을 심화시켰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2000년대 초 ‘신임금구조협약’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 직종별 통합임금체계였다. 이 제도로 연공급 형태의 연차등급이 사라져 연차수당이 폐지됐다. 또 직무와 업무 숙련도, 작업부하량이 임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능력과 성과, 역할을 혼합한 능률급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유사한 직무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이 적용되고, 생산직과 사무직 근로자 간의 차등대우가 사라졌다. 사무직과 생산직 간의 협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단순 노동을 하는 근로자나 판매직, 기술직은 근로조건이 예전보다 좋아졌다. 숙련된 근로자는 승진기회와 자기계발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직무·직종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불평등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고 반뮐러 교수는 지적했다. 신규 입사자들은 임금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숙련도가 낮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저숙련 사무직도 임금이 떨어졌다. 반뮐러 교수는 이들을 ‘임금체계 개편의 패자’로 지칭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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