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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지방 맛집의 역습

중앙일보 2014.05.29 00:21 경제 2면 지면보기
28일 오후 2시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1층 식품관. 평일 오후인데도 ‘대한민국 No.1 부산어묵 삼진어묵베이커리 초대전’ 매장 앞에는 몇 겹씩 줄을 섰다. 1953년 문을 연 부산 맛집 삼진어묵의 서울 나들이를 찾은 손님들이다. 주부 김선희(46)씨는 “서울에는 없는 어묵 고로케가 특이해서 40분 동안 기다려 겨우 샀는데 너무 맛있다”고 말했다. 이 매장은 불과 나흘 동안 매출 6000만원을 기록했다.


줄줄이 상경, 서울에 점포 낸 명가
대구 서가앤쿡, 평택 영빈루 …
홍대·가로수길·강남역·백화점 진출
나주곰탕·부산복국 등 지역색 독특
이미 입소문 타고 경쟁력도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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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맛집 거리인 홍익대 앞에는 ‘송탄 영빈루’가 있다. 경기도 평택시 송탄동의 영빈루가 모태다. ‘송탄 마약짬뽕 홍대 입성’으로 화제가 됐다. 옥수수버터구이가 유명한 홍대 꼬치구이집 ‘히노아이’는 대전 출신이다. 간판 옆에 ‘네이버에 대전 히노아이를 쳐보세요’라고 커다란 현수막도 내걸었을 정도로 ‘대전 맛집’이란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대전·대구·부산·전주 등 지방에서 먼저 명성을 얻은 맛집들이 서울의 대형 백화점과 홍대·가로수길·강남역 등 주요 상권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강남역 상권에서는 미즈컨테이너·서가앤쿡·바르미샤브샤브앤칼국수 등 ‘대구 출신 3총사’가 이름 높다. 30분 정도는 줄을 설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는 피자가 유명한 미즈컨테이너는 공사장 컨셉트의 인테리어에 맞춰 번호표 대신 주문번호가 적힌 안전모를 준다. 직원이 손님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 파이브’를 하는 등 활기찬 분위기다. 강남역 두 개의 매장에 이어 지난해 여름 홍대 앞에 가게를 냈다. 97년 창업해 대구에 지금까지 3개 매장을 냈는데 서울 매장과 숫자가 같아졌다.



 2006년 대구 동성로에서 시작한 서가앤쿡은 이제는 대구·경북 지역보다 서울에 매장이 더 많다. 강남역뿐 아니라 홍대·종로·대학로 등 주요 상권에 12개가 있다. 한 중견 외식업체 대표는 “요즘 외식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브랜드가 서가앤쿡”이라고 말했다. 파스타·리조토 등을 파는데 모든 메뉴를 2인분 단위로 파는 것이 독특하다. 가격도 모두 2인분에 1만9800원으로 통일했다. 메뉴마다 달걀프라이를 얹어주는 것도 눈길을 끈다.



서울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본점에 있는 전주 풍년제과 매장에서 수제 초코파이를 판매하고 있다.
 97년 대구에서 시작한 바르미샤브샤브앤칼국수는 1만원대 초반에 샤부샤부를 먹으면서 샐러드 뷔페를 즐길 수 있어 인기다. 강남역 외에도 신도림역의 디큐브시티나 가산디지털단지의 마리오아울렛 등 대형 쇼핑몰에 입점했다. 대구 출신답게 샤부샤부 육수가 일반적으로 쓰는 맑은 국물이 아니라, 고춧가루가 들어가서 붉고 얼큰한 육수다.



 지난해 봄 부산에 문을 연 한국식 디저트 카페 ‘설빙’은 빠른 속도로 서울에 진출했다. 약 1년 만에 가로수길·홍대·종로·강남역 등 서울 주요 상권 곳곳에 문을 열었다. 콩고물을 얹은 인절미 빙수, 빵 사이에 떡을 넣은 인절미토스트 등이 주요 메뉴다.



 신촌 등에서 인기 있는 치킨 전문점 ‘무봤나촌닭’도 이름에서부터 부산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먹어봤니? 시골닭’을 부산 사투리로 쓴 것이다. 고추장 치킨이 유명한데 매운맛을 단계별로 조절하고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원목 인테리어에 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김밥 속재료가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인 ‘고봉민김밥’도 부산·경남 지역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서울까지 진출했다. 서울 대치동·삼성동 등에 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금수복국’도 부산 해운대에서 올라왔다. 복어를 찌개가 아니라 국으로 끓인 부산 지역 특유의 음식이다.



 제주 흑돼지구이 전문점인 ‘흑돈가’는 제주에 본점이 있지만 삼성동·명동 등 서울 매장이 6개로 훨씬 많다. 충북 제천의 약초밥집 대보명가는 수유리에서 남녀의 체질에 맞춰 지어주는 약초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28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식품관의 부산 삼진어묵 매장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지역 맛집도 서울로 속속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여름 ‘하루에 300그릇만 판다’는 전주의 유명 콩나물국밥집 ‘삼백집’이 가로수길에 문을 열었다. 전주 본점과는 달리 가로수길에 어울리는 세련된 외관이 인상적이다. 또 다른 콩나물국밥 명소인 전주 남부시장의 현대옥도 가로수길·코엑스 등 서울 곳곳에 가맹점을 운영 중이다. 전남 나주의 ‘하얀집’은 올림픽공원 근처에 ‘곰탕 3대’를 앞세우며 ‘나주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강원도 춘천의 샘밭막국수는 교대역 근처에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방 맛집들이 최근 몇 년간 서울에 급속하게 늘어나는 까닭은 뭘까. 한국외식업중앙회 신훈 정책개발부장은 “맛집 여행이 유행하면서 여행지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을 서울에서도 즐기고 싶어 하는 이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주5일 근무 정착과 함께 장기적인 경기 침체 속에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전국 맛집 여행’이 보편화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음식을 앞에 두고 찍은 ‘인증샷’과 ‘전국 5대 짬뽕’ ‘원조 빵집’ 같은 맛집 리스트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실제로 서울에 문을 연 지방 맛집 중 상당수는 ‘블로거가 극찬한 서산 맛집’식의 홍보 문구를 붙이고 있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가격이나 맛, 마케팅 등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지방에서 성공을 거둔 맛집이 서울로 올라오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한 외식 시장에서 이미 한 번 검증받은 브랜드라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못 보던 음식’이라는 점도 소비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지방색이 짙은 음식(전주 콩나물국밥·부산 복국·나주 곰탕·제주 흑돼지구이)뿐이 아니다. 피자·파스타 등 전국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지방 특유의 푸짐한 양(서가앤쿡·바르미샤브샤브앤칼국수 등)과 독특한 매장 분위기(미즈컨테이너·고봉민 김밥 등) 등으로 차별화했다.



 컨설팅기업 쿠시먼앤웨이크필드 박현아 이사는 “동반성장위원회의 대기업 출점 규제 등으로 복합쇼핑몰 등이 대기업 대신 새로운 맛집을 찾아 유치하려는 경향도 이들 유명 지방 업체의 서울 입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복합쇼핑몰의 경우 비싼 권리금 대신 매출에 따른 수수료만 다달이 내면 돼 지방 맛집들의 목돈 부담도 줄었다.



 한 외식업체 관계자는 “요즘엔 임대료나 운영 비용 등이 서울보다 덜 드는 지방에서 먼저 창업을 하고, 역으로 서울 입성을 꾀하는 외식업체들도 있다”고 했다.



 주요 백화점이 팝업스토어(단기 임시매장) 형태로 ‘지방 맛집 모시기’에 나선 것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지난해 1월 튀김소보루로 유명한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 롯데백화점 본점 팝업스토어가 1주일 만에 매출 1억5000만원을 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3개월 뒤 문을 연 군산의 단팥빵 명가 ‘이성당’ 팝업 매장에는 3만 명이 몰려들었다. 이후 롯데백화점은 속초시장의 명물 ‘만석 닭강정’, 안동 ‘버버리 찰떡’ 등 다양한 지방 맛집을 소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팝업 매장을 거친 뒤 서울에 정식으로 진출한 업체도 있다. 이성당은 이달 5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입점했다. 정식 매장이 된 뒤에도 개점 시간부터 단팥빵을 사려는 손님이 줄을 선다. 수제 초코파이와 전병이 유명한 전주의 ‘풍년제과’도 현대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본점·무역센터점·목동점 등 핵심 점포 3곳에 입점했다. 백화점의 지방 맛집 팝업스토어는 굳이 현지에 내려가지 않고도 쇼핑하러 나온 길에 지방의 유명 먹거리를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손님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크다. 업체 입장에서도 서울 진출의 성공 여부를 시험해볼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득이 된다. 롯데백화점 식품MD팀 박영준 선임상품기획자는 “앞으로도 지역의 유명한 먹거리를 다양하게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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