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디의 '강한 인도'… 아시아 민족주의 충돌 예고

중앙일보 2014.05.28 01:50 종합 16면 지면보기
호전적 민족주의가 아시아를 격랑의 파고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운 나렌드라 모디가 26일 새 인도 총리로 취임하면서 중국·일본·러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의 주요 4개국이 호전적 민족주의 지도자를 갖게 됐다.


아베, 모디에 "첫 순방국 일본으로"
양국, 중국과 영유권 갈등 동병상련
시진핑·푸틴 신밀월에 맞대응 전략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겨 인기를 얻고, 국제적으로 협력보다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일본이 역외 이해 당사자인 미국과 함께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 견제에 나서고,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맞서 협력을 강화하며 아시아가 갈등의 축이 될 조짐을 보인다. 일본의 극우 민족주의가 태평양전쟁을 유발했고 유럽 민족주의가 제1·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됐다. 세계 10위 이내의 국방비를 쓰는 아시아 주요 4개국의 민족주의 득세가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모디는 26일 취임식에서 “인도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이끌어가자”고 역설했다. 그는 총선에서 “미국인들이 이민 오고 싶어 하는 인도를 만들겠다”며 ‘강한 인도’ 건설을 약속했었다. 부패척결과 경제성장 등 국내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중국에 맞먹는 인도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빠지지 않는다. 인도는 북동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50여 년간 중국과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다. 또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를 넘어 인도양으로 세력을 뻗치는 걸 우려한다. 모디는 취임식에 앙숙인 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 총리를 초청하고 27일 정상회담에서 협력을 다짐했다. 1947년 독립 이후 사이가 나빴던 파키스탄과 손을 잡아 주변을 안정시킨 뒤 중국과 경쟁하겠다는 계산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그런 모디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모디의 첫 순방국으로 일본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디는 아베 1기 내각 때인 구자라트 주지사 시절 일본 기업 유치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었다. 아베는 인도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기술력·자본을 가진 일본과 노동력·시장이 있는 인도는 매력적 조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아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된 일본의 전후 체제를 개혁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27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중국의 동·남중국해 무력 시위와 관련해 “무력이나 강압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과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갈등하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역시 가만있지 않는다. 시 주석은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하며 미국이 중국을 대등한 파트너로 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중국의 영향권으로 선언하며 미국의 간섭에 반발한다. 베트남·필리핀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시사군도(베트남명 호앙사)·난사군도(영어명 스프래틀리)에서도 중국은 주변국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시 주석은 미국이 일본·인도·베트남 등을 끌어들여 중국을 포위하려고 한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로 갈등을 빚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일 상하이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영토분쟁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2018년부터 30년간 총 4000억 달러(약 410조원) 규모의 천연가스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기로 했다. 중국으로서는 에너지 수급을 안정화하고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추진하는 유럽 대신 안정적 수출처를 확보하게 됐다.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푸틴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서방의 제재를 무력화시키고 미국의 국제사회 영향력을 견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한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독립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크림반도 합병은 러시아의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며 푸틴의 권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문제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과 2008년 금융위기 등으로 재정이 고갈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우크라이나 사태에 소극적으로 개입해 동맹국들로 하여금 미국이 언제까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투르키 알파이살 왕자는 27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늑대(러시아)가 양(우크라이나)을 먹어 치우는데 구조할 양치기(미국)가 없다”고 꼬집었다. 오바마는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으로 아시아 내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나 중국은 오바마가 중국을 봉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오바마가 지난달 일본을 방문해 센카쿠 열도를 미·일 안보조약 대상이라고 선언하자 중국은 격렬히 항의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오바마가 외교정책에서 올바른 식견을 갖고 있다고 믿지만 이를 외교 전략으로 전환시키지는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베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 되는 해로, 당시 영국과 독일이 서로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었음에도 전쟁이 발발했다”며 “일본과 중국이 무력 충돌할 경우 두 나라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재홍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